【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임종석 비서실장이 8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18.01.08. [email protected]
영화의 소재가 된 '6월 민주항쟁'은 그만큼 문 대통령과 참모들에게 갖는 의미가 크다. 실제 임 실장 이하 대통령비서실은 86(80년대 학번+60년대 출신)운동권이 주력이다. 직접 6월항쟁에 참여한 이들도 있고, 6월항쟁의 영향을 받아 학생운동을 전개한 이들도 많다. 그중 문 대통령, 임 실장, 조 수석의 경우 직접 6월항쟁에 뛰어들었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지금은 청와대의 주역이지만, 당시는 6월항쟁의 주역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월 페이스북을 통해 "1987년 1월 박종철의 죽음을 처음 알았다. '탁자를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경찰의 발표를 들으면서 피 끓던 분노를 기억한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또 "2∼3일 후 당시 노무현 변호사와 함께 아버지 박정기 선생의 댁을 찾아가 위로를 드렸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영화 '1987'에 자신이 활약한 부산 국본 관련 내용은 안 나온다는 말을 듣고 "6월항쟁은 서울만 보여줘도 된다"며 "박종철 열사에 관한 것이라면 화장해서 재 뿌리는 것, 49재, 그런 장면이 특별한 것"이라고 밝혔다.
임종석 실장의 경우 그 유명한 '임길동' 시절이었다. 신출귀몰한 학생 운동가로 이름을 날릴 때다. 임 실장은 1986년 한양대 무기재료공학과에 입학하고, 1987년 노래패 '소리개벽'에 가입하며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6월항쟁 참여 등을 거쳐 1989년 전대협 의장에 올라 전국적인 명성을 쌓는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임 실장은 국회의원 시절인 2004년 9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1987년 6월 연세대 집회에 갈 때는 가발도 쓰고 화장도 하고 점도 찍어서 변장을 했다"며 "경찰이 알아보는 바람에 도망을 갔다가, 결국 모 언론사 기자의 차 트렁크에 들어가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고 당시의 활약을 회고했다.
【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민정수석. 2017.05.06. [email protected]
조국 수석은 박종철 열사의 부산 혜광고, 서울대 선배로 6월항쟁에 자연스럽게 참여했다. 조 수석은 혜광고 시절에는 박 열사를 몰랐고, 대학교 시절 고교 동창회를 하면서 박 열사와 인연을 쌓기 시작했다. 조 수석 본인의 말 대로라면 "간헐적으로 만나던 사이"다. '진중하고 진지했던 학생'으로 박 열사를 기억하고 있다.
조 수석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시를 회고했다. 2012년 1월 라디오 인터뷰에서 조 수석은 "(박 열사가) 고문으로, 물고문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부르르 떨리더라"며 "당시 치안본부에 직접 전화를 했다. 스스로 흥분이 되어가지고, 전화를 해서 막 욕을 하고 고함을 질렀던 기억이 난다"고 설명했다.
6월항쟁 활동에 대해서는 "당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이 주도를 했지만, (진실이) 차례차례 밝혀지는 과정에서 고등학교 동문들, 대학 선후배들이 모였다"며 "그 활동들이 쌓이고 쌓여서 진실이 밝혀지고, 그 뒤에 이어서 6월항쟁으로 가게 되었던 단초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수석은 박 열사의 죽음이 자신의 사회적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해왔다. 조 수석은 2012년 1월 또 다른 라디오 인터뷰에서 "6월항쟁의 시작점이 된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당시 저를 비롯한 젊은이들을 엄청난 부채의식 속에 살게 했다. 그것이 이 자리에 나를 있게 한 것 같다"며 "국가 형벌권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 것인가, 국가 형벌권은 어떻게 행사되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제 전공으로 형사법을 택한 이유"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