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패싱하고 南에 손짓한 김정은…文 한반도정책 '기로'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2018.01.0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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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대미 핵위협보다 남북관계 개선 '방점'…南 통해 북미협상 모색 포석

2018년 새해를 맞아 1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육성 신년사를 조선중앙TV가 보도하고 있다. 2018.01.01.(사진=조선중앙TV 캡쳐) /사진=뉴시스2018년 새해를 맞아 1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육성 신년사를 조선중앙TV가 보도하고 있다. 2018.01.01.(사진=조선중앙TV 캡쳐) /사진=뉴시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일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이를 위한 남북 당국 간 만남을 직접 언급했다. 우리 정부의 대화 제의에 불응하던 북한이 이번엔 미국에 메시지를 내는 대신 남북관계 개선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정부는 모처럼의 국면전환을 주도할 기회를 얻었으나 북미 사이에서 대화의 조건을 조율해야 하는 쉽지않은 입장에 놓이게 됐다.

◇대미위협보다 '남북관계 개선'에 방점= 김 위원장이 이날 오전 9시30분(평양시 오전 9시) 조선중앙TV를 통해 30분간 내보낸 육성 신년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남북관계에 큰 비중을 실은 것이 특징이다. 김 위원장은 평창올림픽을 언급하며 "민족적 대사들을 성대히 치르고 민족의 존엄과 기상을 내외에 떨치기 위해서라도 동결상태에 있는 북남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며 남북 간 교류·협력, 각계각층의 대화와 접촉을 열어놓겠다고 밝혔다.



평창올림픽의 "성과적 개최"를 바란다며 극히 이례적으로 우리 정부에 유화적 제스처를 취했으며, 대표단 파견과 당국 간 만남을 말하면서도 전제조건은 달지 않았다.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 필요성을 언급하긴 했으나 직접적인 조건의 형식은 아니었다. 반면 미국과 관련해서는, '핵단추'를 운운하며 미 본토가 핵타격 사정권에 있다고 위협하긴 했으나 직접적인 메시지를 내진 않았다.

북한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의 여지가 보이지 않자, 남북대화를 통해 협상의 활로를 트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핵문제에 있어 미국과만 상대하겠다는 기존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을 수정했다는 해석이다. 다만 북한의 이번 신년사가 미국과 적대하고, 남한만 상대하겠단 의미는 아니란 분석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북한이 갑자기 미국과 대립하고 한국과만 대화하겠다는 것으로 보면 너무 설득력이 없다. '통남통미'하겠다는 것"이라며 "지난해까지 미국만 상대해보니 성과가 없다고 판단해 남북접촉을 통해 북미 간 접근을 하겠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핵단추' 언급은 대미위협보다는 소규모 핵무기를 실전배치했단 것으로, 결국 핵보유국의 간접적 선언"이라고 밝혔다.

◇공 넘겨받은 정부…'위기'와 '기회' 동시에= 공은 우리 정부에게 넘어왔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문재인정부의 한반도 정책이 '평창 평화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달려있단 점에서, 이번 북한의 신년사는 일단 긍정적이란 평가다. 우리 정부가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에 앉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북한의 핵보유국 위치를 인정하지 않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대화의 조건을 긴밀한 조율을 해야 하는 쉽지 않은 위치에 놓이게 됐다.

먼저 평창올림픽과 관련해서는 미국을 포함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 국제사회가 북한의 참가를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현재 자력으로 출전권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와일드카드'를 통해 피겨와 쇼트트랙 등 종목에 참가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면전환을 올림픽 이후까지 이어가 핵문제 해결을 위한 유의미한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를 끌어낼 수 있을지 여부는 정부의 능력에 달렸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해 긴장완화하고 남북관계가 긍정적으로 발전할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며 "문제는 이를 어떻게 발전시키느냐인데, 미국이 북한 올림픽 참여를 환영하더라도 북미 간 입장이 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올림픽이 끝나고 한미연합훈련이 재개됐을 때 긴장국면으로 흘러간다면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도, 위기가 될 수도 있다"라며 "이 상황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끌 수 있도록 올바른 상황평가가 필요하고 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부재한 것이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양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앞으로 5년 임기 내내 한반도의 긴장이 지속될 것이고 대화를 통한 한반도 문제와 북핵문제 해결은 어려워질 것이다. 이번 기회에 남북 당국이 신뢰 속에 군사훈련부터 적십자회담까지 모든 의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협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일단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실무접촉 등은 앞으로 전체적으로 조율할 문제"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뒀다. 정부는 조만간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의사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하는 것으로 남북 간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남북은 물밑접촉을 통해 당국 간 회담에 각 의제를 한 번에 올릴지, 군사회담 등을 따로 열지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평창올림픽 일정 등을 감안하면 1월 중순쯤 남북 당국 간 접촉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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