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가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과 함께 지난 10년간 월간 종합차트 1위 곡의 가사를 분석한 결과 '후크(핵심멜로디) 반복', '의미 없는 내용', '영어', '대화체' 등이 주요 가사적 특징으로 나타났다. /사진=Let's CC
특히 댄스곡의 영어 가사는 최소 30%에서 최대 70%까지 사용돼 글로벌 진출을 향한 아이돌 그룹의 목표를 읽을 수 있었다.
가인의 ‘피어나’는 ‘Chemical blue ocean’ ‘neuron’ 등 이해하기 쉽지 않은 영어 단어를 활용했고 ‘eh’ ‘oh’ 같은 반복적 의성어를 빼놓지 않았다. 가사의 절반 이상 영어 단어를 사용한 싸이의 ‘젠틀맨’은 전라도 사투리 ‘알랑가 몰라’를 반복 사용해 재미를 높였고 ‘헉소리, 악소리/미끈, 새끈/용기, 패기, 똘끼’ 등 말장난 형식의 가사를 대거 투입했다.
요즘 노래 가사는 젊은 세대의 대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하다. '쌩얼'이나 'cheer up' 등 기성 세대가 쉽게 이해하지 못 할 신조어나 영어 단어 사용도 잦다. 사진은 가수 소유와 정기고. /사진=최부석 기자
소녀시대의 ‘I Got a Boy’에선 말하는 듯한 표현이 그대로 사용됐다. “왜 그랬대? 궁금해 죽겠네. 말해 봐봐 좀~” “너 잘났어 정말”처럼 상대방에게 직접 던지는 직설 대화법을 중심으로 ‘민낯’ ‘멘붕’ 등 현재 유행하는 단어를 가사에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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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각과 정은지의 ‘짧은 머리’에서도 ‘쌩얼’이라는 단어를 통해 ‘너 오늘 왠지 예뻐’라고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MC몽의 ‘죽을 만큼 아파서’에선 ‘너희 집 앞으로 가고 있어/빨리 전화받어’ 같은 대화체가 가사의 중심이다.
◇ 절반 이상이 ‘영어 가사’…한글과 영어 혼용
소녀시대, 싸이, 포미닛, 씨스타, 빅뱅 등의 노래 가사에선 최소 30%에서 최대 70%까지 영어 가사를 썼다. 빅뱅과 투애니원의 ‘롤리팝’은 가사 중 70% 가깝게 ‘롤리팝’이란 영어 단어를 반복하며 가사를 채웠다. 다비치 ‘8282’, 포미닛의 ‘이름이 뭐예요?’, 씨스타의 ‘터치 마이 바디’ 등도 40% 이상 가사를 채워 영어에 친숙한 신세대와 눈높이를 맞췄다.
영어가사는 주로 한글과 운율을 맞추기 위해 쓰인 보조용이나 한글은 주로 영어는 동사 식으로 혼용하거나 ‘텔미 나우’(Tell me now) 식으로 단 문장을 독립적으로 쓰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Cheer up’ ‘TT’ ‘Knock Knock’ 등 내는 곡마다 1위를 찍은 트와이스의 곡들은 ‘친구를 만나느라 shy shy shy’ 같은 가사(cheer up)처럼 혼용의 법칙에 가장 잘 부합하는 곡으로 통했다.
신한류 기간(2008~2017)에 활동한 걸그룹은 수동적인 여성상을 벗어나 당당한
자기표현과 사랑을 주도하는 능동적 여성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사진은 가수 이효리. /사진=최부석 기자
자기표현과 사랑을 주도하는 능동적 여성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사진은 가수 이효리. /사진=최부석 기자
‘엄마는 왜 날 이렇게 낳아서 내 삶을 피곤하게 하는지…’ 원더걸스의 ‘So hot’은 자기 미모와 능력을 직접적으로 과시하며 당당한 여성성을 제시한다. 이효리는 ‘유 고 걸’을 통해 ‘솔직하게 이제부터 당당하게 너의 마음을 보여줘’라며 주체성을 강조하고 원더걸스는 ‘노바디’에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당당하게 메시지를 전한다.
보이그룹이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해 심경을 토로하는 내용으로 가사를 꾸리는 반면, 걸그룹은 대체로 능동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적극적인 여성을 주제에 담는다. 때론 충고도 잊지 않는다. 투애니원은 ‘아 돈 캐어’에서 ‘이제와서 울고불고 매달리지마/니가 너무너무 한심해’라며 연인에게 냉정한 충고를 던진다. 직접적으로 ‘널 내가 갖겠어’라며 좋아하는 사람을 쟁취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노래는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이돌 그룹의 노래와 달리 발라드 노래는 감동적인 서사를 통해 청자와의 감정 교류를 가능케 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비 아이돌 그룹의 발라드곡에선 영어 가사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노랫말도 발라드라는 전통적 특성을 반영하는 스토리 중심의 전개, 상처받은 이의 감정선 공유가 공통적으로 스며있었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가 않아/어디에 있는지 몰라/더듬거리다 찾아다니다/이제야 손 끝에 닿았나 봐/~’ 거미의 ‘눈꽃’에는 드라마 한편을 보듯 회화적이고 시적인 언어로 가득하다. 버스커버스커의 ‘처음엔 사랑이란게’에서도 사랑이 쉬운 줄 알았는데 그리움도 외로움도 찾아볼 수 없는 막막한 감정이라는 점을 드러내며 대중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윤종신의 ‘좋니’, 박지헌의 ‘보고싶은 날엔’, 김종국의 ‘어제보다 오늘 더’, 2AM의 ‘죽어도 못 보내’, 아이유의 ‘썸데이’ 등도 쉽고 간결한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절절하고 간절하고 인내하고 고통스러운 사랑의 단면을 감동적으로 내보인다.
아이돌 그룹의 댄스 음악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기보다는 즉흥적으로 소비하는 콘텐츠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여성 그룹 마마무. /사진=홍봉진 기자
음악이 예전처럼 집중해서 듣는 작품이라는 인식과 멀어지면서 음악은 이제 양분화했다. 아이돌 그룹 중심의 댄스는 즉흥적으로 소비하는 상품으로, 발라드는 하나의 스토리로 완성되는 작품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그것이다.
전문가들은 앨범에서 음원 구매로 바뀐 음악 소비 패턴이 다른 전달과 접속의 방식을 통해 가볍고 즐기는 콘텐츠로 인식하게 만든 것이라고 진단한다. 온라인 음원사이트 상위권에 대부분 랭크된 아이돌 그룹의 댄스 음악에서 대화체로 꾸미거나 영어 표현이 장난처럼 쓰이는 등 재미 위주의 가사가 중심인 것도 음악의 (전달·접속)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앨범에서 곡 단위로 바뀌고 쉽게 접속하고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음악은 텍스트 맥락을 찾거나 집중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기 어려워졌다”며 “호흡이 짧아지는 음악은 전체적인 추세”라고 했다.
걸그룹의 당당한 여성성을 주제로 노래한 곡들에 대해서도 황 평론가는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수동을 능동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사랑 노래에서 여성이 주체적인 듯한 표현으로 능동성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는데, 이젠 사회 문제로 확장한 여성의 능동성을 얘기할 때”라며 “‘선영이는 혁명한다’는 식의 화끈한 가사도 나와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