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프리즘]비트코인 게임의 숨은 승자

머니투데이 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2017.12.27 03:00
글자크기
 가상통화(암호화폐) 투기 열풍이 거세다. 비트코인 시세 그래프를 보고 있자면 지금이라도 합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가도 하루아침에 20% 넘게 폭락하는 걸 눈으로 지켜보며 순간 냉정을 되찾곤 한다. 주변에선 앞으로 수십 배 더 오를 것이니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과 대폭락이 임박했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필자 주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직장인들의 송년회나 주부·대학생들의 모임에선 단연 비트코인이 화제다. 거래 규모가 이미 코스닥 시가총액을 앞질렀고 국내 가상통화 거래 가격이 해외 가격을 훨씬 웃도는 투자 과열을 빗대 ‘김치 프리미엄’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전체가 비트코인에 푹 빠졌다.



 투자자들 입장에서 가상화폐 가치 논쟁은 한가한 소리일 수 있다. 롤러코스터처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시세 등락 속에 내가 산 가격보다 오르느냐, 내리느냐만 눈앞에 있을 뿐이다. 저금리·저수익률 시대 1000% 이상의 고수익을 안겨줄 찬스가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가상통화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이 기존 인터넷 거래 체계를 전면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은 ‘판돈’을 쌓아올리기 위한 최면으로까지 작용하는 듯하다.
[디지털프리즘]비트코인 게임의 숨은 승자


워런 버핏은 비트코인을 “신기루”라고 평했고 얼마 전 한국을 찾은 제드 매케일럽 마운트곡스 창업자마저 “현재 가상통화 거래시장은 99%가량이 거품”이라고 경고했다. 거품이 한순간 꺼졌을 때 우리 사회가 헤어나올 수 없는 패닉에 빠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데도 ‘인생역전’을 꿈꾸는 욕망 앞에 ‘폭탄 돌리기’ 게임은 쉬 멈출 기미가 없다. 그래서 걱정이다. 이렇게 되면 블록체인이 아무리 좋은 미래 기술이라도 환멸을 부를 수밖에 없다. 과거 2000년대 초 닷컴 버블이 한순간 꺼진 뒤 IT(정보기술)업계가 한동안 혹한기를 겪어야 했던 것처럼.

 이쯤에서 냉정히 짚어봐야 할 게 또 있다. 근래 가상통화 시세가 급등하면서 누가 가장 큰 이득을 봤을까. 초기 투자자들일까. 아니다. 아마도 기업 정보를 빼돌린 뒤 이를 미끼로 비트코인을 요구했던 해커 집단들이 진정한 수혜자일 것이다. 지난 5월 ‘워나크라이’ 랜섬웨어를 제작, 유포한 해커 그룹은 전세계 150여개국 23만대 이상의 컴퓨터를 감염시키며 13만달러 이상의 비트코인을 챙겼다. 그들이 확보한 비트코인의 가치는 불과 7개월 새 10배 가까운 130만달러까지 불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국내 웹호스팅업체 인터넷나야나에 랜섬웨어를 감염시킨 해커는 이를 대가로 13억원어치의 비트코인을 챙겼다. 그들의 해킹 수익은 6개월 만에 77억원을 넘어섰다. 이만한 장사가 없다.



 현금으로 바꾸지 않는 한 금융거래 추적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수십 배의 시세차익까지 노릴 수 있다는 점이 해커들이 그토록 비트코인에 집착한 이유 아닐까. 지난해 기업과 개인의 데이터를 노린 해커 상당수가 비트코인 부호가 됐을 것이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가상통화 규제나 거래시장 검증 시스템이 없다 보니 극소수 세력이 거래시장을 움직인다는 괴소문도 나돈다. 음지 속 시세조정 세력과 비트코인을 노린 사이버 공격자들의 이해관계가 기가 막히게 맞물린다. 공교롭게 워나크라이 등 대형 사이버 공격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비트코인 가격이 크게 올랐다. 현재의 가상통화 투기 열풍을 예사롭게 볼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