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의 해학…“스님 책 1~4등, 수녀 작가에도 관심을”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7.12.1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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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6년 만에 산문집 ‘기다리는 행복’ 낸 이해인 수녀

6년 만에 산문집 '기다리는 행복' 낸 이해인 수녀. /사진제공=샘터6년 만에 산문집 '기다리는 행복' 낸 이해인 수녀. /사진제공=샘터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성 베네딕도 수녀회. 기자 간담회 분위기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이해인 수녀(72)라는 묵직한 존재감 때문인지 자판 치는 소리조차 내면 안 될 것 같은 엄숙한 분위기가 계속됐다.

적막을 깬 건 이해인 수녀. 그는 5분간 어제 부산에서 만들었다는 각종 선물을 공개하며 어린아이처럼 들뜬 목소리로 깨알 같은 설명을 잊지 않았다. 암 투병 10년째, 다시 만난 그의 목소리는 낭랑했고 말은 여전히 빨랐다. 달라진 게 있다면 재미가 곱절 늘었다.



“작년에 제가 부산에서 강의하고 있는데, 그날 죽었다는 소문이 인터넷에 올라오고 추모글까지 나오는 걸 봤어요. 제가 살아있다고 어디 가서 항변하기도 그렇고….”

이해인 수녀는 이 ‘황당한’ 얘기를 재미있게 버무리며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아프다는 것, 그것이 주는 느낌 뒤편에는 역설적으로 기쁨, 즐거움, 행복 같은 단어를 더 많이 애용하고 깊이 들여다보는 기회와 만날 수 있었다.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산문집 ‘기다리는 행복’은 그렇게 탄생했다.

“‘오늘의 행복’. 이게 제 인생관을 반영하고 근황을 표현하는 말인 것 같아요. 지난 반세기 동안 모든 사물과 자연, 사건, 함께하는 사람의 모습을 ‘읽는 사람’으로 살아왔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걸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행복이 왔다 갔다 하니까요.”

암 하나쯤 하며 씩씩하게 견뎌낸 세월이 적지 않은데, 그는 책에서 분홍 타월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 한바닥 쏟은 일화를 공개하며 ‘행복’을 다시 정의했다.


“투병 시작했을 때, ‘명랑 투병’하겠다고 큰소리치면서 눈물 흘리거나 푸념조차 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항암 치료가 끝나고 제 배를 덮은 분홍 타월을 볼 때마다 포대기를 덮은 아기 같은 느낌이 순간 스치더라고요. ‘내 아픈 시간을 이 ‘사물’이 함께 견뎌주는구나’ 어떤 동료의식에 감동의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사물에서도 이런 감정을 느끼는데, 사람을 향할 땐 어땠겠어요?”

이해인 수녀는 1968년 수도자의 길을 걸었다. 내년이 벌써 ‘수도서원’ 50주년이다. 그는 “자축하고 싶다”고 소회를 밝혔다.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언니 수녀가 규율이 엄격한 수도회에 들어갔는데, 그때만 해도 저는 허영심이 많고 남학생한테 인기가 많아 공주처럼 세속적인 삶을 동경했어요.(호호) 그러다 모든 삶에는 끝이 있고 청춘도 단 한 번이라는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수도회에 들어갔죠. 시작할 땐 이 생활을 잘 끝낼 수 있을까 두려움이 컸지만, 벌써 50년이라는 세월을 견뎠으니 자신에게 고맙다는 선물을 주고 싶어요.”

이해인 수녀의 해학…“스님 책 1~4등, 수녀 작가에도 관심을”
‘기다리는 행복’은 수도자로 살며 시와 산문을 쓴 종교인과 작가의 삶을 담은 산문집으로, 그간 신문 등에 써온 글과 첫 서원 직후 1년간 몰래 적은 단상의 글 140여 편이 새로 수록됐다.

작가의 눈으로 본 수도원의 구체적 일상부터 투병으로 다시 바라본 삶의 소중함까지 보통의 언어로 채색한 특별한 의미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그의 언어에는 학자의 유식함이나, 유명인사가 골라 쓰는 그럴듯한 특별어들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언어든 다 소중하다는 듯 귀 기울여 듣고 알알이 내뱉었다.

답변 마지막엔 언제나 그렇다는 듯 구수한 위트를 잊지 않고 깔깔 웃으며 듣는 이들 모두 친구이자 이웃으로 포용했다.

“요즘 서점에는 스님 책들이 1등부터 4등까지 올라가 있잖아요. 부산은 특히 불심이 강해서 스님 작가들만 나타나면 사람들이 미어터지죠. 수녀 작가에도 관심 좀 가져주시길.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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