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보수의 몰락-⑤멋없는 보수(下)

머니투데이 박소연 김태은 백지수 ,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기자 2017.12.15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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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종합

진보라는 말이 사라진다…'보수' 말할수록 지지율 낮아지는 역설
[런치리포트]보수의 몰락-⑤멋없는 보수(下)


보수 진영 내 '보수의 몰락'이란 자조가 팽배한 가운데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문재인정부는 오히려 ‘진보’ 색채를 뺀다. 거대 이념보다 유권자 개인이 느끼는 가치를 중시하는 흐름 때문이다. 정치가 개인화, 스타일화되는데 보수는 이런 트렌트를 간과한 채 이념을 부여잡고 '보수 재건'을 시도한다.

◇이념에 집착하는 '보수' vs 스타일 신경쓰는 '진보'= 문재인 정부는 탄핵과 촛불혁명이란 토대로 탄생했다. 직접 민주주의, 적폐 청산을 강조할 뿐 '진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이념에 기대기보다 지지층과 팬덤, 여론 등을 국정 동력으로 삼았다. '명분'과 '소통'의 정치로 가능했다.



문 대통령은 정책 추진에 있어 명분과 정당성을 최우선으로 내세웠다. 신고리 원전 5,6호기와 관련, '숙의 민주주의' 과정을 통한 결론을 도출해낸 게 좋은 예다. 또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발사하자 이튿날 사드(THAAD) 발사대 추가배치를 강행했다. 초강경 대북 타격훈련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대북정책으로 진보진영 일각에서 "박근혜정부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한반도 현 상황의 엄중함을 근거로 압박정책을 추진한다.

탈이념 정치는 보수 진영의 '안도감'을 불러와 보수의 결집을 느슨하게 하는 효과를 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지지율로도 나타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되고나니 생각만큼 진보적 정책을 펴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수 지지자들이 안심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갑자기 세상이 진보로 바뀌고 그런 게 아니니 당분간 관망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특히 정책 못지않게 친근한 이미지와 민주적 소통 방식을 부각해 지지를 얻고 결집력을 높인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잔상이 남은 대중들에게 탈권위화는 가장 강력한 전략이자 정책이다.

반면 야권은 여전히 계파 주도권 싸움에 머문다. 자유한국당은 눈에 띄는 개혁보다 계파청산과 보수대통합, 대여투쟁 논의에 매몰돼 있다. '개혁보수'를 표방하는 바른정당 역시 유승민 대표 체제 이후에도 '독자 브랜드'를 구축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통 행보를 '쇼통'이라고 비난하는 것 외 별다른 대응책도 없다.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는 "지금 정당정치를 고집하는 것은 과거형이며 시대착오적이다. 이미 개인, 스타쉽(starship)에 기초한 팬덤정치의 시대"라며 "2017년 한국 사회라는 동시대성 하에서 현실적 적합성을 근거로 진보를 찾을 수밖에 없다. 진영 논리의 보수와 진보는 사라졌고 각각의 진보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플랫폼 정당' 등 21세기적 해법 필요= 더불어민주당은 당 혁신 방향으로 21세기형 '플랫폼 정당' 시스템을 제안했다. 앞서 국민의당 역시 창당 당시부터 '플랫폼 정당'을 지향점으로 제시해왔다.

정치권에서 미래형 정당 시스템으로 거론되는 플랫폼 정당은 개방과 참여, 협력, 공유 등 새로운 소통구조를 지닌 플랫폼 서비스를 기반으로 정당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합의제 직접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의 형태다. 흐르는 의사결정구조, 즉 '리퀴드(liquid) 민주주의'의 구현이다.

플랫폼 정당은 참여자들이 의제에 따라 합의와 설득에 직접 나서고 이를 통해 결론을 도출해나가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정당이 보수나 진보, 어느 한 방향을 설정하고 그에 맞춰 이념이나 노선을 노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상 기존 이념 정당의 몰락을 전제한 새로운 개념의 정당 시스템이다.

옛 새누리당도 플랫폼 정당으로의 전환을 시도한 적이 있다. 19대 국회 당시 시도된 새누리당 모바일정당 '크레이지 파티'다. '크레이지 파티'는 투표 연령을 만 19세에서 18세로 낮추는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참여자들의 의견을 모아 직접 법안 발의에 나서는 등 기존 보수정당의 틀을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같은 시도는 지속되지 못하고 정당의 '전통적' 주제인 공천권 등에 묻혔다.

이병수 뉴딜정치연구소 소장은 "플랫폼 정당은 보다 대중적 시스템, 보다 대중적 의제, 보다 대중적 인물, 보다 대중적 풀뿌리 하부조직 구성 등의 조건이 적절하게 조합이 돼야 새로운 혁신 정당의 모델로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정당혁신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도 변죽만 울리는 결과에 봉착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플랫폼 정당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특정 정당에 국한되는 이념적 정체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된다. 현대 사회의 갈등 구조는 보수와 진보, 두 가지 이념으로 재단하기 이미 불가능해졌다. 오히려 각 사안별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플랫폼 정당에 폭넓게 참여해 공통의 합의사항과 지향점을 도출하는 것이 플랫폼 정당의 목표가 된다.

유민영 대표는 "결과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구현해 나가는 것이 플랫폼 정치"라며 "진영과 이념이 아닌 개인들의 다양한 생각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 21세기 새로운 정치가 지향해 나가야 할 바"라고 말했다.



보수가 떠난 자리…"'쇼통'이 소통을 만드는 시대"

트위터리안 '평행선'이 직접 찍은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고화질 '직찍' /사진=트위터 캡처트위터리안 '평행선'이 직접 찍은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고화질 '직찍' /사진=트위터 캡처
#제19대 대통령 선거일인 지난 5월9일, 인기 아이돌 그룹 엑소(EXO)의 한 팬이 운영하는 계정에 엑소가 아닌 활짝 웃는 문재인 대선 후보의 고화질 사진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그는 1만4000여명 팔로워를 거느리며 엑소 팬들 사이에 유명한 '홈마(팬페이지 운영자)'였다. 사진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그는 지난 10월 "대통령님·지지자들 모두 함께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 올리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탄핵 이후 치러진 지난 19대 대선은 그 어느 대선보다 후보들의 '이미지'가 부각됐다. 문재인 당시 후보의 경우 이 현상이 두드러졌다. 아이돌 팬들이 '오빠' 대신 문 후보를 찍으러 음악방송 스튜디오 대신 유세장을 따라다닐 정도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은 아이돌의 작은 몸짓 하나 하나처럼 정치 팬덤 안에서 소비됐다. 특히 문 대통령에게 '우리 이니'라는 친근한 명칭까지 붙었다.

문 대통령도 마치 아이돌처럼 대중이 원하는 '팬서비스'를 했다. 취임 8일 만이었던 지난 5월18일 광주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 현직 대통령으로서 9년 만에 참석했다. 옛 정부에서 제창을 금했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참석자들과 불렀다.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정부군에 가족을 잃은 유가족을 끌어안으며 위로하는 '돌발 상황'도 있었다.

야당에서는 이런 ‘소통’ 방식을 ‘쇼통’이라고 비판했다. 보여주기식 ‘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지지율은 비판보다 환호라는 점을 보여준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200일 넘게 70% 안팎을 유지한다. 각종 지지율 조사에서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문 대통령 지지율이 과반 이상으로 높게 나타났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2030 세대 지지율은 이달 첫주 조사에서 80% 이상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소통'은 문 대통령 지지 이유 1·2위를 다툰다.

이미지 정치가 탄핵 이후 국면에서만 효과를 본 것은 아니다. 정권을 막론하고 중요하게 작용했다. 17대 대선 국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국밥 먹방(먹는 모습을 방송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시장통 한 허름한 국밥집. 백발의 주인 할매가 뚝배기를 내려놓자 국밥 한 술을 크게 퍼 입으로 가져가는 이 전 대통령 모습에서 서민적인 '먹방왕' 이미지가 탄생했다. 실제 그의 정치가 어떻든 '복스럽게 잘 먹는다'는 평가는 샐러리맨 출신의 자수성가 정치인이라는 그의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졌다.

다만 이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쌓은 서민적인 '먹방왕' 이미지는 빠르게 무너졌다. 취임 직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에 대응하며 보인 불통과 친기업적 정책들이 이어진 탓이다. 한국갤럽 조사 기준 이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2주만에 23%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취임 초 76%였던 지지율이 취임 7주 만인 4월 셋째주 조사에서 44.6%에 불과했다. 온라인상에서는 그의 '국밥 광고'를 패러디하며 '국(國)밥을 말아 먹었다'는 조롱이 이어졌다.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는 "보수가 늙고 낡고 재미없다는 이미지를 가지면서 흥미를 끌지 못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진보·보수라는 낡은 프레임 대신 2030 세대 청년들은 진정성을 가지고 세련되고 멋있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정치인들을 지지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30대 자유한국당 한 관계자도 "솔직히 보수는 쿨하지 못하고 멋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에 대해 멋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사람들 마음을 사려고 하고 고상하고 따뜻해서인데 그것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며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을 최소한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점 때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2030 세대는 정치인뿐 아니라 정당에 대해서도 메시지보다 이미지로 지지 여부를 정한다. 여당 지지자라고 밝힌 한주현(28)씨는 "민주당이 기존 정치인 외 다양한 분야에서 인재를 영입한다거나 예쁜 디자인과 굿즈(goods) 등으로 홍보를 세련되게 하는 점이 좋았다"며 "하다못해 굿즈까지 좋은 품질로 만들 수 있는 정당이라면 좋은 사람들일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친구들 중에는 각 정당 대표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이 많다"며 "그런 친구들에게 다가가려면 세련된 이미지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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