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판례氏] '근로시간 감축' 꼼수로 최저임금 부담회피는 '부당'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17.12.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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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대법 "최저임금 소급배제 약정도 무효, 최저임금 규정은 강행규정"

임종철 디자이너임종철 디자이너


"최저 수준의 임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해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제정된 법이 최저임금법이다. 내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7530원으로 10년 전(3770원)의 2배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으로 결정돼 시행을 앞두고 있다.

노사간 합의한 소정 근로시간을 종전 대비 대폭 줄이는 식으로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을 회피하고 2년 이상 누적된 근로자들의 최저임금 청구권을 사후적으로 박탈하려던 기업이 있었다. 강행규범인 최저임금법의 취지를 회피하려던 이같은 시도가 부적법하다고 본 대법원 판례(2017년 2월15일 선고, 2016다32193)가 있어 소개한다.



지방 소재에서 택시운송업을 영위하는 A사는 2010년 7월 새로 택시업에 시행될 최저임금 규정에 대비하기 위해 노조와 임금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2007년말 최저임금법 개정 이후 2년6개월이 흐른 2010년 7월부터 새로 시행될 최저임금 규정이 A사 입장에서 과도한 부담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회사의 택시기사들은 주당 44시간씩 근무하면서 차종에 따라 매일 4만8000원~5만4000원씩의 사납금을 A사에 냈다. 기사들이 근무시간을 넘겨 하루 12시간씩 일하면서 사납금 이상을 벌더라도 자기 수입으로 가져갈 수 있는 돈(초과운송수입금)은 월 150만원으로 제한됐다. A사는 각 기사들이 낸 사납금에서 별도로 기사들에게 고정급으로 44만5000원 정도를 지급했다. 고정급과 초과운송수입금은 기사들 월급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였다.



종전까지 최저임금은 고정급에 초과운송수입금까지 더한 금액으로 산정됐다. 하지만 2010년 7월부터는 고정급만으로 최저임금을 산정한다는 게 새로 시행되는 법규정의 핵심이었다. 한달 근무일수(25일)와 소정 근로시간(주44시간)을 감안할 때 A사가 지급하던 고정급(44만5000원)은 2010년 최저임금(4110원)에 훨씬 못 미치는 2500~2800원 정도에 불과했다.

A사와 노조는 새로운 단체협약이 체결되기까지는 새로운 최저임금 규정의 적용을 미루자고 합의했다. 그리고 2012년 10월말이 돼서야 새로운 단체협약이 체결됐다.

최저임금 산정방식이 문제가 됐다. A사와 노조가 체결한 새 단체협약에 따르면 소정 근로시간은 '하루 3시간20분, 주20시간'으로 종전(하루 7시간20분, 주44시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대로라면 종전 대비 고정급이 단 1%도 오르지 않더라도 최저임금을 훨씬 웃도는 고정급을 회사가 지급하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생긴다.


더 논란이 됐던 것은 2012년 10월말 체결된 이 내용을 2010년 7월1일 시점에 소급적용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단체협약이 체결되지 않던 2010년 7월~2012년 10월 기간 기간 주44시간씩 근무한 근로자들에게 "사후적으로 주20시간에 해당하는 최저임금을 준 것으로 하자"고 정해버린 것이었다. A사와 노조는 새로운 협약으로 정해진 사납금 인상분을 근로자에게 청구하지 않는 대신 근로자들에게도 최저임금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약정도 맺었다.

근로자들은 2010년 7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A사가 실제 지급한 임금·퇴직금과 마땅히 근로자들이 받았어야 할 최저임금과의 차액만큼을 지급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1심은 근로자들의 주장을 전부 받아들였다. 1심 재판부는 "A사는 2010년 7월 이후부터 법이 정한 이상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은 근로자에 대해서는 당연히 지급됐어야 할 임금이 포함된 금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새로운 최저임금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기로 한 노사간 약정은 강행규범인 최저임금법에 위배돼 무효"라고 지적했다.

또 "A사가 정한 새로운 최저임금 산정기준(하루 3시간20분, 주20시간)은 원고들이 이미 제공한 근로시간보다 현저히 짧다. 형식적으로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소급적으로 체결한 합의에 불과하다"며 "원고들이 받아야 할 임금 등을 산정할 때는 기존 단체협약에 따른 기준(하루 7시간20분, 주44시간)이 적용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2심에서는 판단이 완전히 달라졌다. 2심 재판부는 "2012년 변경된 협약이 체결되고 이를 소급적용하기로 한 이상 A사에 대한 근로자들의 최저임금 등 청구권은 모두 소멸했다"며 "최저임금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A사로서는 원고들이 뒤늦게 최저임금 차액을 청구하지 않았으리라 기대하게 됐다. 원고들의 청구는 이같은 신의에 반하는 권리행사로 허용될 수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재차 2심을 뒤집고 원고승소 취지의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2010년 당시 A사와 노조가 맺은 '최저임금 규정 적용유예' 합의는 최저임금 상당의 지급을 잠정적으로 유예하자는 취지일 뿐 최저임금 상당의 임금 지급 자체를 후속 단체협약으로 정하자는 취지로 볼 수 없다"고 봤다.

또 "(새로운 단체협약 체결 전) 이미 지급청구권이 발생한 임금이나 퇴직금은 근로자의 사적영역으로 옮겨져 근로자 처분에 맡겨진 것"이라며 "근로자로부터 개별적 동의나 권한위임을 받지 않은 노조가 사용자가 체결한 협약만으로 (최저임금 등의) 포기나 지급유예와 같은 처분행위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근로자들의 최저임금 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된다는 A사의 주장에 대해 "새로운 단체협약 체결이 지연된 데 대해 근로자 측의 일방의 귀책사유가 있다고 할 수 없고 근로자들이 최저임금과 실제 임금 사이의 차액을 청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의를 제공했다고도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문제가 된 최저임금 규정이 시행되기 전 A사는 성실히 단체교섭을 진행해 새 단체협약을 체결함으로써 경영상 위험을 회피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다"며 "원심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했다.

한편 이번 판결로 파기환송된 A사와 근로자 사이의 다툼은 원심법원에서 A사가 1심 판결에 대한 항소를 취하함으로써 근로자 승소로 최종 결론이 났다.

◇관련규정
민법 제2조(신의성실)
①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
②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

최저임금법 제6조(최저임금의 효력)
① 사용자는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액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② 사용자는 이 법에 따른 최저임금을 이유로 종전의 임금수준을 낮추어서는 아니 된다.
③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근로계약 중 최저임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을 임금으로 정한 부분은 무효로 하며, 이 경우 무효로 된 부분은 이 법으로 정한 최저임금액과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으로 본다.
⑤ 제4항에도 불구하고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3조 및 같은 법 시행령 제3조제2호다목에 따른 일반택시운송사업에서 운전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최저임금에 산입되는 임금의 범위는 생산고에 따른 임금을 제외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임금으로 한다.
⑦ 도급으로 사업을 행하는 경우 도급인이 책임져야 할 사유로 수급인이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지급한 경우 도급인은 해당 수급인과 연대(연대)하여 책임을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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