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베낀 제도로 기업 압박하는 정부

머니투데이 세종=정혜윤 기자 2017.12.13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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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차 의무판매제가 도입되면 공급 불확실성이 해소돼 전기차 보급을 위한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만들 수 있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지난달 ‘전기차리더스포럼’에서 한 말이다. 친환경차 의무판매제는 전기차 등 친환경차를 일정 비율 이상 팔도록 하는 것이다. 매년 의무 판매비율을 정하고, 연간 계획을 지키지 못하면 판매자에게 과징금을 매긴다. 미국 캘리포니아 등 10개 주에서 시행하는 ‘무공해차 판매의무제’를 본 땄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차를 사는 소비자에게 부담금을 물어 친환경차를 사는 소비자에게 보조금을 주는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도 2019년 이내에 시행방안과 시기를 확정하기로 했다. 당초 2021년 이후까지 시행 유예키로 한 것을 뒤집었다. 이 역시 프랑스가 소형차 중심의 자국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한 것을 베낀 것이다.



친환경차가 세계적인 추세인 건 맞다. 노르웨이는 2025년, 영국·프랑스 등은 2040년 내연기관 자동차를 아예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이들은 전기차 등 충전 인프라가 이미 갖춰져 있고, 규제 도입도 수십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이뤄져 왔다.

반면 한국은 친환경차 보급이 목표치 이하인데다 인프라가 부족해 의무판매제 도입을 하긴 이르다. 정부가 지난 9월 미세먼지 대책을 발표하면서 2022년까지 전기차는 1만2000대에서 35만대로, 수소차 100대에서 1만5000대로, 하이브리드차는 23만8000대에서 163만5000대로 올리겠다고 했지만 행정용 목표만 내세운다고 되는 건 아니다.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지원과 함께 국내 자동차 제작사에 책임을 물어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전기차 보급 목표 1만대 중 60%도 달성하지 못했다. 게다가 전기차 보조금은 내년부터 대당 200만원이 깎인 1200만원만 주어진다. 여건이 다른데 외국 제도를 표절해 할당량을 정하고 밀어내기 하듯 팔라는 건 자동차업계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밖에 없다. 제도의 맥락을 읽고 선별하는 안목과 충분한 인프라 조성, 각계의 의견수렴이 먼저여야 한다.
기자수첩용 정혜윤기자수첩용 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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