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년 간 각 시대 문장가들이 빚어낸 명문 600여 편을 8년 만에 완성한 안대회(성균관대, 왼쪽)·정민(한양대, 가운데)·이종묵(서울대) 교수. 이들은 지난 1일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찬란한 우리 고전을 발췌해 품격을 높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사진제공=민음사
‘한국 산문선’이라는 이름의 고전을 묶은 선집이 한문학자 6인의 8년 고생 끝에 탄생한 것이다. 모두 9권에 빼곡히 적힌 명문 613편은 지난 1300년간 한 시대를 빛낸 작가 229명의 글로, 신라의 고승 원효부터 민족주의 역사학자 정인보까지 망라됐다.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 스퀘어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책임 집필진 3인인 안대회(성균관대)·정민(한양대)·이종묵(서울대) 교수는 “일반 독자에게 한문은 암호문과 다름없이 외면받기 십상이지만, 보석 같은 문장들을 그냥 묻어둘 수 없었다”고 ‘쓰지 않을 수 없는’ 배경을 밝혔다.
고전이나 한문 등 형태적 요소로만 보면, 착 감기는 맛은 없지만 문장 속 ‘그들의 생각’을 좇다 보면 시대적 혜안과 감동이 절로 솟는다. 우리가 당면한 외교나 환경, 정치, 여성관까지 바로 옆에서 ‘조언’해주는 듯하다.
정 교수가 다룬 허균의 논설 ‘문설’에선 글 잘 쓰는 방법을 다루고, 이 교수가 해석한 ‘철쭉’을 소재로 한 글에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삶의 해법을 일러준다.
자신이 늙어가는 것을 모르는 것이 노망이라고 설파한 대목이나 여자가 아무리 잘못 했다고 해도 대부분의 책임은 남자에게 있다며 이혼을 말리는 퇴계 이황의 설득에선 깊은 통찰을 맛볼 수 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제9권의 마지막 문장인 정인보의 ‘첫사랑’에서 16세 앳된 아내를 기억하며 써 내려간 남편의 글은 가슴 밑바닥 한 구석을 꽤 오랫동안 아프게 한다.
정 교수는 “오늘날 젊은이들이 읽어도 공감할 수 있는 가치와 감동이 수두룩하다”며 “고전의 인식을 바꾸는 중요한 기폭제가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책에 실린 600여편 글 가운데 절반쯤은 거의 첫 번역이고, 나머지 절반 역시 1960~1970년대의 옛 번역밖에 없던 글들이다. 1~3권은 신라부터 16세기까지 자유분방한 산문을, 4~6권은 성리학적 질서가 본격화되는 선조 때부터 영조 중반 때까지의 치밀한 문장과 사유의 힘을 보여 주는 글들을, 7~9권은 영조 후반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파격적이고 다채로운 스타일의 글들을 가려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