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모간스탠리가 맞을까? 내가 맞을까?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장 2017.12.0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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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편집자주]

모간스탠리와 같은 세계적인 증권사의 방대한 데이터를 통한 정밀한 분석과, 거의 논리적 근거 없이 약 4반세기(24년) 동안 반도체 업계를 지켜봐 온 기자의 감(感) 중에 어느 것이 더 정확할까.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미래 성장성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 모간스탠리의 지난달 26일 보고서에 대한 얘기다.



'만화로 보는 반도체 이야기'라는 시시한(?) 책을 저술한 정도의 기자의 업력과 감만으로는 모간스탠리의 우수함을 따라갈 수 없다. 하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르고, 예측 또한 불가능하다.

간혹 삼성 고위 관계자들에게 미래를 묻는 우문을 할 때가 있다. 그때 들은 얘기로는 '미래를 잘 내다봤다'로 정평이 나 있던 이건희 회장이 자사의 전략기획실장(미래전략실의 전신) 등과 미래에 대해 논의하면서 "미래 참 모르겠다"라고 했던 대답이 떠오른다.



◇모간스탠리가 모르는 3가지=모간스탠리가 정교한 분석을 통해 반도체의 미래 시장을 전망했다는 것에 대해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미래가 쉽게 예측 가능하다고 말 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자신감으로 보인다. 메모리 시장이 최고 정점을 지났다는 분석도 마찬가지다.

기자 입장에서 볼 때 모간스탠리가 간과한 것이 3가지 정도 있는 듯하다. △김기남의 리더십 △3차원 낸드(V낸드) 기술의 격차 △글로벌 트렌드 변화 등이 그것이다.

반도체 업계에서 DS(디바이스솔루션즈) 부문장을 맡은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 석학회원(펠로우)인 김기남 사장에 대한 존재감은 남다르다.


2014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SK하이닉스의 최고위 임원은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이 권오현 부회장(현 삼성종합기술원 회장)에서 김기남 사장으로 바뀌었을 때 "SK하이닉스의 봄날은 다 갔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 권 회장은 '관대하다'라는 평을 들어왔다. 기술력이 뛰어나지만 후발주자들이 어느 정도는 따라올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주는 스타일이라는 평이었다.

바다낚시로 치면 권 회장은 대어를 낚기 위해 릴을 풀어주는 타이밍의 CEO 역할을 했다면, 김 사장은 낚시대를 배에 받히고, 힘껏 끌어당기며 릴을 감아 들어가는 타이밍의 CEO다.

생산량을 대량으로 늘려 가격을 급격하게 다운시키기보다는 플레이어들이 숨을 쉴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주면서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높이는 게 권 회장의 역할이었다. 반면 김기남 사장에 대한 평가는 다르다.

김 사장은 그의 유한 외모와 달리 '차돌처럼 다부지다'라는 평을 듣는다. 그가 종합기술원에 있을 때도 매일 아침 7시부터 1시간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전세계 반도체 관련 논문을 훑어본 후 연구원들을 불러 옴짝달싹 못하게 할 정도로 다그치기로 유명했다.

권 회장이 토론형 리더십이라면, 김 사장은 돌격대장형 리더십에 가깝다는 게 반도체 업계의 평가다. 이는 글로벌 시장이 치열한 경쟁기에 접어들 때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핵심경쟁력이다. 경쟁업체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 '김기남이 무섭다'는 게 당시 경쟁자들의 평가였다.

◇삼성전자 낸드플래시는 다르다=두번째는 가격하락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낸드플래시 기술력에 관한 부분이다. D램의 경우 내년 수요도 여전히 견조할 것이라는데 별로 이견이 없다. 특히 삼성전자의 18나노 D램은 올해말 비중이 40%로 늘어나 서버용 시장에서 충분히 이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예상된다.

모간스탠리가 우려하는 낸드플래시의 가격 문제와 관련해선 시장의 우려와 달리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타 경쟁업체들에 비해 크게 앞선다는 점이 수익성의 핵심 포인트다.

요즘 반도체 업계에선 잊혀졌지만, 원래 반도체 가격은 D램이든 낸드플래시든 매년 30~40%는 하락하는 게 정상이었다. 생산성 향상의 속도에 따라 가격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게 정상이었는데, 최근엔 거꾸로 오르는 기현상이 나타났고, 이로 인해 오히려 더 큰 이익을 본 상황이었다.

반도체 시장은 매년 4분기가 최고점이고, 1분기가 전통적 비수기로 수요도 줄어들고 가격도 하락한다. 아마도 내년 1분기도 비슷한 양상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인 현상일 것으로 예상되며, 가격 하락에 따른 타격은 후발주자들에게 더 크게 다가갈 듯하다.

삼성전자가 현재 양산 중인 64단 3차원 V낸드에 이어 내년에 양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5세대 96단 V낸드까지, 후발주자와의 기술력의 격차는 여전하다.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2위인 도시바의 2배를 넘어선 37.2%다. 이 갭은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점유율 1위 사업자가 시장의 수익률을 결정하는 시스템이 유효하다. 그래서 삼성전자가 덜 걱정스러운 이유다.

◇반도체 호황?, 4차 산업혁명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세번째 시장의 변화다. 모든 기기가 상호 연결되고 자율적으로 소통하는 4차 산업혁명은 시작도 되지 않았다. 이제 막 클라우드 컴퓨팅을 중심으로 소규모(?) 시장이 형성된 단계다.

본격적인 수요는 더 장기적인 호황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아마존, 구글, 애플, 알리바바 등 클라우드 서비스를 위한 시장의 확대로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게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첫 파도다.

최근 들어선 각 기업들이 이같은 클라우드 서비스로 인한 내부 보안 허점을 막기 위해 자체 서버를 구축하는 흐름까지 나타나고 있다. 또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등 새로운 트렌드는 더 많은 메모리 수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과 애플, 아마존과 MS 등 글로벌 상위 6개 IT기업의 서버 시설투자금액은 내년에 536억 달러(약 59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데, 여기에 새로운 수요가 생긴다는 얘기다. 이런 새 수요에 대한 소식은 이제 막 고객들로부터 주문을 받고 있는 반도체 업계의 최근 현장의 목소리다.

중국의 메모리 시장 진출이 변수이기는 하지만 이는 2~3년내에 삼성전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는 힘든 대목이다.

이런 3가지 이유로 최소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 대한 우려는 '모간스탠리'가 하는 만큼 크지 않다는 게 기자 개인의 사견(思見)이다.

◇증권사 매도 의견 안 믿었다면 1450% 수익률=이번 모간스탠리의 삼성전자 비중축소 보고서 외에도 매도 보고서는 지난 2000년부터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대표적인 레퍼토리다.

2000년 9월, 2002년 5월 UBS 워버그가 삼성전자 매도 보고서를 냈고, 2002년 당시에는 보고서가 공개되기 직전에 대규모 매도를 하면서, 불공정거래 혐의로 한국지사장이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 이후 2004년 4월 도이치 증권이 2분기가 꼭지라는 보고서를, 2008년 12월 CLSA 리포트, 2010년(어딘지 기억은 안나지만), 2013년 6월 JP모간이 매도의견 보고서를 냈던 걸로 기억된다.

증권사들은 투자자들이 주식을 샀다가 팔았다를 반복할수록 자신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진다.

증권사는 길을 가다가 강도를 당한 사람을 돌봐주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아니다. 그들은 삼성전자가 위험에 노출된 것을 알지 못하는 불쌍한(?) 개인 투자자들에게 올바른 길을 걷게 하고, 투자 손실을 줄일 수 있도록 선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거래가 일어나지 않을 경우 수익이 없는 증권업의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목적이다. 사고, 팔도록 추천하고 이를 통해 거래가 발생할 때 수익을 얻는 게 그들의 일이다.

투자자들이 주식을 가만히 보유하고 있으면 떨어지는 구전(口錢)이 없다. 국내 굴지 그룹의 재무담당이 한 증권사 사장에게 들은 말이다.

"왜 우리 회사가 합병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증권사에서 계속 합병 가능성에 대해 리포트를 내느냐"라는 질문에 그 증권사 사장은 "우리도 합병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시장은 이벤트를 원한다.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죽은 시장이다. 일말의 여지라도 있으면 이벤트를 키워야 증권사도 먹고 살지 않겠냐"라는 게 그의 대답이었다고 한다.

2000년 9월 당시(주당 18만원 내외) UBS 워버그의 삼성전자 매도 리포트를 따르지 않고,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투자자들이라면 아마도 1400% 이상의 수익을 올렸을 것이다. 반면 투자자들이 수익을 올릴 동안 주식거래가 없어서 증권사는 굶어 죽었을 지도 모른다. 현재 상황은 그 반대다. 내년 이맘 때쯤 모간스탠리가 맞았는지, 기자가 맞았는지 한번 볼 일이다.
오동희 부국장 겸 산업1부장오동희 부국장 겸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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