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수사권 논의, 60년간 '혈투' 살펴보니…

머니투데이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7.11.27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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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美군정 수사-기소 분리 추진하다 선회…양 기관 비방 끝에 수사권 파동까지

검경수사권 논의, 60년간 '혈투' 살펴보니…


경찰개혁위가 검경 수사권 조정 권고안을 내놓으면서 60년간 논의돼온 형사사법체계 개편이 이번 정부에서 이뤄질지 관심이 쏠린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정치적 변혁기마다 제기돼 온 핵심 과제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는 일제로부터 비롯됐다. 당시 일제는 식민지 행정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중앙집권적인 형사사법체계를 도입했다. 검사에 대해서는 검사동일체 원칙, 사법경찰관에 대하여는 검사에 대한 복종의무를 규정해 형사상 명령체계를 일원화했다.



광복 이후 미 군정은 당초 일본에서와 같이 수사(경찰)와 기소(검찰)기관을 분리하는 미국식 형사제도를 도입하려 했다. 그러나 신생 독립국가에는 형사소추기능의 신속한 회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부각되면서 제도운영방향을 전환, 1948년 8월 검찰청법을 제정해 검사에게 범죄수사에 관한 경찰 지휘감독권을 부여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부터였다. 4·19 의거 직후 허정 과도정부가 출범하자 경찰행정개혁심의회는 일본처럼 경찰에 1차적 수사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건의했고, 당시 민의원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경찰중립화 법안을 논의했다. 중립성이 확보되는 방향으로 경찰제도가 개편된 상황에서 계속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인정할 경우, 검찰총장을 통해 법무부장관과 여당으로 연결돼 전체 수사가 정치권에 종속될 수 있어 경찰수사권의 독립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 법안은 검찰의 강력한 반발과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좌절됐다. 군부가 지배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검찰권 강화에 주력하면서 조정 논의는 힘을 잃었다. 군부는 검사를 통해서만 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1962년에는 5차 개헌에서 이를 헌법에 규정했다. 1972년에는 유신헌법 제정과 함께 형사소송법상 구속적부심사제도를 폐지하고 판사의 보석·구속취소·구속집행정지에 대한 검사의 즉시항고제도를 신설하는 등 검찰권을 크게 강화시켰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수사권 조정 논의는 1997년 15대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가 경찰수사권 독자성 확보를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다시 떠올랐다. 국민의정부 출범 이후 경찰에 1차적, 독자수사권을 부여하는 기존 논의와는 달리 '민생범죄만 경찰이 독자 수사할 수 있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이를 규정한 민생침해범죄특례법은 국회 상정이 좌절됐다. 1999년에는 검경간 힘겨루기 양상이 진행되면서 상호 비방까지 해대는 이른바 '수사권 파동'이 일자 청와대는 기관간 분쟁 확대를 우려해 수사권 조정 논의를 강제로 중단시켰다.

수사권 조정가 공론화된 것은 참여정부 들어서였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당시 대선후보는 민생범죄에 대한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 부여를 공약으로 제시했고, 당선 이후 이를 주요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2003년에는 경찰청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사법경찰의 수사권 조정안을 공식 제출하면서 다시 논의가 불이 붙었다.


2004년 검찰과 경찰 실무진이 참여한 수사권조정협의체가 발족해 9차에 걸쳐 38개 쟁점에 대해 협의를 진행하고 긴급체포시 사후승인제 폐지 등 19개 안건에 대해 양측 의견조정이 가능한 수준까지 논의가 진행됐으나 경찰의 수사주체성 인정, 검경간 협력관계 정립 등 핵심 쟁점에 이견을 보이며 결렬됐다. 검찰,경찰이 각각 6인씩 추천해 구성한 수사권조정자문위원회가 그해 발족해 협의체에서 상정한 26개 안건에 대해 논의했지만 수사권 조정의 핵심인 당시 형사소송법 195조 개정(경찰의 수사개시권 명문화), 196조 개정(검찰의 수사지휘권 조정)에 대해 조정이 이뤄지지 않아 최종 조정안 도출에 실패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수사권 조정은 국정과제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기점으로 검찰수사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고, PD수첩 사건과 강기갑 의원 사건 등에 대한 무죄 판결로 법-검 갈등이 심화되자 2010년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구성돼 2011년 3월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경찰수사개시권 명문화 △사법경찰관의 검사에 대한 복종규정 삭제를 전격 발표했다.

그해 6월 청와대에서 막판 조정협상이 벌어졌고, 첨예한 대립 속에서 총리실은 7개정 11개 조문으로 이루어진 강제조정안을 제시, 검사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보장하되 사법경찰관도 자유로운 수사개시권을 갖는 '검경수사권 합의안'을 도출해 사개특위에 제출했다. 특위는 이를 수용·입안해 법사위에 제출했다. 이 합의안에는 '모든 수사(내사 제외)'에 대한 검사의 지휘권을 인정하되 사법경찰관은 범죄혐의가 있다고 인식할 때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에 관해 수사를 진행할 수 있고, 경찰은 검사의 지휘에 따르되 구체적인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내용이 규정됐다. 명령복종관계를 규정한 검찰청법 53조도 함께 삭제됐다.

다만 해당 대통령령은 입건지휘, 수사중단·송치명령 등 경찰의 수사를 무력화시킬 수 있도록 했고 검찰개혁이라는 입법 취지가 무시됐고, 절차적 측면에서도 국민 참여가 전무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가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일반적 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하겠다고 공약했고, 다른 주요 대선 후보들도 한 목소리를 냈다. 국정농단 사태 등으로 검찰 개혁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수사·기소권이 집중된 검찰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시점이었다.

법률소비자연맹이 올해 3월 남녀 대학생과 대학원생 425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3.49%가 19대 대선후보의 공통 공약인 경찰수사권 독립에 찬성의견을 밝혔다. 다만 검찰 못지않게 경찰에 대한 신뢰도 역시 낮았다. 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형사사법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12.7%만이 검찰을 신뢰한다고 답변했지만 경찰을 신뢰한다는 답변도 전체의 23.1%에 불과했다. 경찰을 불신한다는 답변은 37.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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