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티카·노페·캐나다구스·롱패딩…'등골브레이커史'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17.11.25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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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노티카, 2011년 노스페이스 열풍…최근에는 너도나도 '롱패딩'

노티카·노페·캐나다구스·롱패딩…'등골브레이커史'


#주부 황수연씨(46)는 최근 롱패딩을 사달라 조르는 고등학교 2학년 아들과 백화점을 찾았다가 가격을 보고 놀랐다. 최소 30만원 이상에 많게는 100만원이 훌쩍 넘는 고가 제품까지 있었던 것. 재작년 산 오리털 패딩을 그냥 입으라고 했지만 아들은 "나 빼고 다 입는다"며 투덜댔다. 결국 그는 60여만원짜리 롱패딩을 3개월 할부로 구매했다. 황씨는 "집에 패딩이 있는데 유행 때문에 또 산 것 같아 아깝다"며 "자식이 사고 싶어하는데 모른척 할 수도 없는 것이 부모 마음"이라고 말했다.

10대 중·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롱패딩' 열풍이 불면서 롱패딩이 새로운 '등골브레이커(고가라 부모의 등골을 휘게하는 제품이라는 뜻)'로 자리 잡았다. 한 벌에 수십만원씩 하는 프리미엄 패딩을 조르는 자녀들 때문에 학부모들은 가격 부담을 호소하고 있는 반면, 학생들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것"이라며 항변하고 있기도 하다.

롱패딩 뿐 아니라 과거부터 추운 계절이 돌아올 때면 고가의 겨울 점퍼로 인한 학부모들의 부담이 컸다. '등골브레이커사(史)'를 정리해 봤다.



◇1990년대 주름 잡던 바람막이 점퍼 '노티카'=최근에는 패딩이 대세지만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바람막이 점퍼를 위주로 한 '노티카' 브랜드가 학생들 사이 큰 유행이었다.

노티카 점퍼는 원색 컬러에 팔 부위 등에 세로로 영문 브랜드명이 새겨진 것이 특징. 양면으로 뒤집어 입을 수도 있었다. 당시 10대 중·고교생들은 교복 위에 노티카 점퍼를 걸쳐 입고는 했다. 당시 가격으로 10만원대 후반에서 30만원대에 달하는 고가 제품이었다. 등골브레이커의 원조 격인 셈이다.



고등학교 때 노티카 바람막이 점퍼를 입었었다는 직장인 강태욱씨(35)는 "노티카 점퍼를 입은 친구들이 많아 어머니께 사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난다"며 "당시 금액으로 20만원 이상이어서 꽤 비쌌는데 지금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한때 온라인상에서 유행했던 '노스페이스'의 제품 종류별 계급도./사진=온라인 커뮤니티한때 온라인상에서 유행했던 '노스페이스'의 제품 종류별 계급도./사진=온라인 커뮤니티
◇2011년, 고가 패딩 유행의 시작 '노스페이스'=고가 프리미엄 패딩의 논란을 일으킨 대표적인 아웃도어 브랜드가 '노스페이스'다.

2011년 겨울 학생들 사이에서는 '노스페이스 대란'이라 부를 정도로 해당 패딩을 입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당시 노스페이스 패딩 가격은 최저 25만원에서 최고 70만원에 달했다. 학부모 등골을 휘게 한다는 가격으로 '등골브레이커'라는 신조어가 처음 등장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노스페이스 점퍼를 입고 다녔었다는 대학생 신준식씨(22)는 "거의 한 반에 20명 정도는 노스페이스 패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당시 온라인상에서는 노스페이스 가격에 따라 학생들의 '계급'을 분류하는 게시물이 만들어져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가장 대중적 모델이었던 '눕시2 자켓’을 입은 학생은 최하 계급, 가장 비싼 모델인 '히말라얀 파카'를 입은 학생은 '대장'이라고 부르는 식이었다.
캐나다구스 엑스페디션 파카./사진=머니투데이캐나다구스 엑스페디션 파카./사진=머니투데이
◇'노페' 바통터치 한 '몽클레르'·'캐나다구스'=2013년부터는 노스페이스 패딩 대신 '몽클레르'나 '캐나다구스' 같은 수입 브랜드 위주로 고가의 명품 패딩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몽클레르' 패딩은 한·중·일 아시아 지역에서 고가 패딩 마케팅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두텁고 큰 옷 맵시가 났던 기존 패딩과는 달리 경량에 보온 소재를 두툼하게 넣고 허리라인은 잘록하게 살려 여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캐나다구스'도 고가 패딩 열풍을 몰고 오며 '몽클레르'와 더불어 양강 구도를 구축했다.

두 고가 패딩은 평균 가격대가 100만원을 훌쩍 넘어 노스페이스보다 훨씬 비쌌던 까닭에 '新(신) 등골브레이커'로 등극하기도 했다. 그러다 해외직구 등으로 인해 희소성이 다소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인기가 사그라들었다.

18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2018 평창 공식 스토어’에 800여 장의 사전 재입고 된 ‘평창 롱패딩’을 사러 온 고객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사진=뉴스118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2018 평창 공식 스토어’에 800여 장의 사전 재입고 된 ‘평창 롱패딩’을 사러 온 고객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사진=뉴스1
◇'롱패딩' 대열풍, '등골브레이커' 계보 이어=올해는 '롱패딩(무릎아래까지 내려오는 다운 소재의 재킷)'이 대세다. 두툼한 소재의 기존 패딩에 아래까지 따뜻하게 감싸주는 덕분에 중·고교생들은 물론 대학생 등 성인들까지 너도나도 롱패딩을 찾고 있다.

롱패딩 가격은 브랜드마다 천차만별이지만 통상 30만~50만원대다. 거위털·오리털 등 소재와 함유량에 따라 70만~80만원 이상 호가하는 고가 제품도 있다. 그럼에도 중·고교생들이 교복 위에 외투처럼 입으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중학생 최모군(16)은 "한 반에 90% 이상은 롱패딩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학부모 부담이 커져 새로운 '등골브레이커'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14만9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평창 롱패딩' 열풍이 불기도 했다. 지난 22일 롯데백화점 잠실점, 영등포점, 평촌점, 김포공항점 등 4개 지점에서 평창 롱패딩의 판매가 재개된다는 소식에 소비자들은 전날 저녁부터 밤을 새면서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기도 했다.

롱패딩을 입고 급식을 받고 있는 학생들./사진=온라인 커뮤니티롱패딩을 입고 급식을 받고 있는 학생들./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전문가들은 중·고등학생들의 모방 심리가 강하기 때문에 이 같은 유행이 번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다른 친구가 사면 나도 그 정도는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모방심리가 어느정도 작용하고 있다"며 "중고생들이 가장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바람직한 소비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만족할 수 있는 것으로 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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