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불은 껐지만…" 도시바, 헤지펀드 먹잇감 전락 우려

머니투데이 유희석 기자 2017.11.21 15:09
글자크기

도시바 5.9조원 증자, 엘리엇·에피시모 등 헤지펀드 참여…경영 간섭 우려 커져

일본 미에현 욧카이치에 위치한 전자업체 도시바의 반도체 공장 모습. /AFPBBNews=뉴스1일본 미에현 욧카이치에 위치한 전자업체 도시바의 반도체 공장 모습. /AFPBBNews=뉴스1


일본 도시바가 6000억 엔(약 5조9248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성공했다. 돈에 민감한 글로벌 헤지펀드들이 대거 몰렸다. 이들이 도시바의 회생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는 의미다. 다만 도시바 내부에서는 경영 간섭을 우려하는 우려도 제기됐다.

◇ 도시바, 상장 폐지 위기 넘겨…WD와의 법적 분쟁에도 유리



20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번 도시바 증자에 최소 35개 이상의 글로벌 헤지펀드가 참여했다. 엘리엇, 파랄론, 에피시모 등 쟁쟁한 대형 헤지펀드가 대거 투자에 나섰다. FT는 "글로벌 헤지펀드들이 도시바 회생에 베팅했다"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도시바가 반도체 메모리 사업 없이도 회생할 수 있다는 데 투자하는 데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증자는 도시바가 상장폐지 우려를 없애기 위해 진행했다. 핵심 부문 가운데 하나인 반도체 사업부인 도시바메모리를 베인캐피털, 애플, SK하이닉스 (236,000원 ▲6,000 +2.61%) 등이 포함된 한미일 연합에 매각하기로 했지만 매각 완료 시기가 늦춰질 우려가 나오면서 증자가 추진됐다. 상장폐지를 피하기 위해서는 내년 3월까지 채무 초과를 해소해야 한다.



증자는 제3자 배정 신주 발행 방식으로 진행되며 다음달 5일 마무리된다. 도시바는 주당 262.8엔에 22억8000만 주를 새로 발행한다. 지난 17일 종가 대비 10%가량 낮은 가격이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서는 40% 정도 저렴하다. 도시바 주가는 2007년 세계 금융위기 전에는 주당 1100엔 이상에서 거래됐다.

도시바는 애초 내년 3월에 끝나는 올 회계연도에 7500억 엔의 손실이 예상됐지만 이번 증자로 최소 수백억 엔의 흑자로 돌아설 전망이다. 증자로 마련한 자금을 미국 원자력발전 자회사 웨스팅하우스 보증채무 일괄 상환에 사용하면 2400억 엔 이상의 세금 부담이 줄어든다.

도시바는 이번 증자로 웨스턴디지털(WD)과의 법적 분쟁도 유리하게 끌고 가게 됐다. 내년 3월 말까지 도시바메모리 매각 없이도 상장폐지를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바는 WD에 미에현 욧카이치 반도체 공장의 제6 제조시설에 공동으로 투자하는 대신, 국제중재재판소에 제기한 도시바메모리 매각 금지 소송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산케이비즈는 "도시바가 증자로 상장 폐지 우려가 없어지면서 WD가 화해에 응하도록 더 많은 압력을 가할 수 있게 됐다"면서 "다만 양측이 그동안 팽팽하게 맞서왔던 만큼 쉽게 화해할지는 예측 불가"라고 전했다.

지난 8월 10일 쓰나카와 사토시 도시바 사장이 2016회계연도(2016년 4월~2017년 3월) 88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한 후, 고개를 숙이고 있다. /AFPBBNews=뉴스1지난 8월 10일 쓰나카와 사토시 도시바 사장이 2016회계연도(2016년 4월~2017년 3월) 88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한 후, 고개를 숙이고 있다. /AFPBBNews=뉴스1
◇ 도시바, 투자자 경영 입김 강화 우려…"투자자 지분 과반 육박할 수도"

도시바 내부에서는 증자 성공에 안도하면서도 대부분의 투자자가 경영 간섭이 심한 행동주의 펀드라는 점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번 증자에 참여한 투자자 중에는 이익 극대화를 위해 기업 경영에 깊숙이 개입하는 행동주의펀드가 다수 포함됐기 때문이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며 '표 대결'까지 벌였던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대표적이다. 자수성가형 억만장자인 톰 스테이어가 창업한 파랄론, 일본 펀드업계 최고 큰손으로 군림하던 무라카미펀드 출신자들이 만든 에피시모, 대형 소매업체 세븐아이홀딩스 임원인사에 이의를 제기했던 서드포인트 등도 도시바의 경영 실적에 제대로 궤도에 오르지 못하면 언제라도 개입할 수 있는 세력으로 분류된다.

마이니치신문은 "해외 펀드는 다양한 수단으로 주가를 높여 이익을 올린다"며 "(도시바에 투자한) 해외 펀드가 어떤 요구를 하고, 언제 차익 실현에 나설지 등 변수가 많다"고 설명했다.

일본 도쿄의 한 연구원은 FT에 "도시바의 증자로 인한 문제는 나중에 커질 수 있다"면서 "도시바가 회생에 성공해서 도쿄증시 1부로 복귀하게 되면 글로벌 투자자 지분이 50%에 육박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도시바 경영이 외국계 헤지펀드에 휘둘릴 수 있다는 의미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