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주민 밤잠 설치는데… "호들갑 심하네" 악플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17.11.21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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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기사 지겹다", "벌 받았다" 등 악성댓글에 이중고…'댓글실명제' 국민청원도

/삽화=김현정 디자이너/삽화=김현정 디자이너


#포항시민 이모씨(38)는 지난 15일 지진이 발생한 이후 매일 밤잠을 설치고 있다. '쿠궁'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렸던 강진과 여진을 수차례 겪으면서 휴대폰 진동 소리만 들어도 깜짝 놀라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19일 밤 규모 3.5의 여진을 겪은 이씨는 기사로 관련 정보를 찾아보다가 악성댓글을 보고 놀랐다. "왜 이렇게 호들갑이 심하냐", "일본 지진에 비하면 애교 수준인데 적당히 좀 하라"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 이씨는 "같은 국민끼리 너무하다 싶었다. 상처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대피소 생활과 연이은 여진으로 피해를 겪고 있는 포항 주민들이 '악성댓글'로 인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포항 주민들을 향해 위로를 건네거나 도움을 주고 있지만 일부 몰지각한 누리꾼들이 입에 담기 힘든 공격을 하고 있는 것. 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거나 댓글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20일 포항 지진 피해와 관련해 기사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상에서 작성된 게시글과 댓글을 살펴본 결과 악성댓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악성댓글이 촉발되기 시작한 것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시험) 연기가 결정됐던 15일 저녁부터였다. 포항 지역 수험생들을 향해 "왜 포항 때문에 피해를 봐야하냐", "지진이 나든 말든 우리가 무슨 상관이냐", "포항 수험생들은 너무 이기적이다"는 식의 악성댓글이 달렸다.



지진 피해를 호소하는 것에 대해 조롱하듯 댓글을 남기는 경우도 많다. 한 누리꾼은 "일본은 규모 7.0 이상 대지진이 나도 차분하게 대응하던데 포항 주민들은 왜 이렇게 엄살이 심하냐"고 비판했다. 다른 누리꾼은 "땅 좀 흔들리는 것이 뭐 대수라고 지겹게 지진 기사만 계속 나온다. 작작 좀 했으면 좋겠다"고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지역 감정 싸움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많다. "경상도 사람들 더 피해 좀 봐야한다", "선거 때 OO당만 뽑더니 꼴 좋다. 벌 받았다", "경상도 지역은 지진이 더 나봐야 정신차릴 것" 등의 악성 댓글도 보였다.

포항 주민들은 무분별하게 달리는 악성댓글로 인해 가슴이 멍들고 있다. 포항지역 수험생 양모군(19)은 "연이은 여진 때문에 공부에 제대로 집중할 수도 없는데 수능이 연기됐다고 욕을 많이 먹었다"며 "포항 수험생들이 원해서 지진이 난 것도 아닌데 왜 공격을 받아야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포항지역 수험생 김모군(19)도 "갑작스레 수능이 연기된 것은 속상하겠지만 가장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포항 수험생들"이라며 "격려는 못해주더라도 힘든 상황에서 욕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포항 지역 주민 윤모씨(48)는 "작은 진동만 있으면 바로 집에서 나가려고 옷도 다 챙겨입고 안경도 끼고 잠을 잔다. 그만큼 긴장하며 힘들게 지내고 있다"며 "작은 위로에도 큰 힘을 얻는데, 악성댓글을 보면 상처를 받고 힘이 빠진다"고 토로했다.

포항 지진 피해를 향한 악성댓글을 계기로 관련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 17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인터넷 댓글 제재 방안'이란 제목의 국민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포항 지진 관련 기사에 달린 도 넘은 악성댓글을 보며 너무 화가 났다"며 "댓글 실명제 등 경종을 울리는 법적 제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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