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를 찌른 文대통령, 이슈 선점과 미래지향 확인

머니투데이 마닐라(필리핀)=최경민 기자 2017.11.1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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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리커창 中 총리와 회담서 예상 밖 세부사항 거론, 의제 선점

【마닐라(필리핀)=뉴시스】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현지시각) 필리핀 마닐라 소피텔호텔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와 회담을 하고 있다. 2017.11.13. (사진=청와대 제공)   photo@newsis.com  【마닐라(필리핀)=뉴시스】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현지시각) 필리핀 마닐라 소피텔호텔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와 회담을 하고 있다. 2017.11.13. (사진=청와대 제공) [email protected]


허를 찌른 한 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의 한 호텔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와 회담을 갖고 중국 내 우리기업이 생산한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제외정책 철회, 한국산 제품에 대한 반덤핑 수입 규제 철회, 미세먼지에 대한 양국 공동대응 등을 제안했다.

당초 한·중 경제 교류의 실무적 문제를 다룰 거라곤 했지만 이같이 세부적인 의제를 언급한 것은 예상 밖이다. 실제로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회담을 앞두고 "의제가 구체적으로 정리되지 않았다"며 "구체적 논의를 위한 협의를 진행하기에는 회담 준비 시간이 너무 짧았다"고 언급했다.



리 총리도 이 같은 기조를 예상하지 못했던 듯 하다. 리 총리는 문 대통령의 세부적인 요청에 맞설 수 있는 중국 측의 제안을 회담에서 전혀 설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 총리는 당초 예상대로 "봄이 오고 있다. 한·중 관계에서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라고 굵직한 관계개선의 메시지를 내는 데 주력했다. 문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서도 즉답을 피하면서 "잘될 것"이라는 취지의 답을 했다.

향후 진행된 한·중 관계 정상화 협상에서 우리 측이 의제를 선점한 모양새가 연출됐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직접 거론한 이슈와 관련해, 다음달 중 예정된 방중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기대도 하고 있다. 방중 협의 과정에서 양국이 '주고 받는' 과정을 거치겠지만, 일단 우리 측의 재빠른 제안으로 의제선점 효과는 누릴 수 있게 됐다.



특히 문 대통령이 거론한 사안들은 한국의 경제·사회적 측면에서 시급한 과제들이다.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지난 7월 문 대통령과 기업인들과의 회동에서 언급된 것이기도 하다. 당시 구본준 LG 부회장은 "우리가 전기차용 배터리를 하는데, 중국이 일본 업체 것은 좋다고 하고 한국 것은 안 된다고 한다"며 "명문화 비슷하게 만들어놨다"고 건의했었다.

미세먼지는 한국의 경제·사회적 측면에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고, 반덤핑 문제도 경제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요구돼 온 사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해당 의제들에 대해 "빨리 (규제나 협력제한을) 풀어주면 좋은 것들"이라며 "리 총리를 만나서 한 개라도 더 말해, 빨리 풀어주면 좋은 것이었다. 우리 측이 시급하다고 느낀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갑작스러울 수 있었던 문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리 총리는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지난 11일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확인한 한·중 관계개선의 의지가 흔들림이 없다는 사실이 재확인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중국 측에서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며 "문 대통령의 제안 등에 대해 당혹스러운 표정이나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 직후 중국의 관영언론인 신화통신이 "한국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해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했다"고 밝힌 것을 두고 여전히 사드가 '변수'로 작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일각에서 나왔다. 그런데 곧바로 이어진 리 총리와의 회담에서 한·중 양측이 "봄이 온다"고 입을 모으고, 리 총리가 문 대통령의 '기습' 제안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답을 했다.

양국이 '과거'보다는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단 점이 드러난 셈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사드 문제는 이미 얘기가 끝났다. 시 주석과의 대화가 있었으니, 그 다음 단계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라며 "리 총리와의 회담은 우리는 많은 것을 받고 싶어했던 자리였고, 저쪽은 자연스럽게 '잘될 것'이라고 반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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