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예술의전당.
1960년대 한국은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외화부족 문제와 실업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당시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으로 인한 인구 감소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특히 간병인처럼 고된 일을 하는 인력의 부족은 심각했다. 이 같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 1968년 해외개발공사에 의해 한국의 간호사들이 독일로 이주하기 시작, 1976년까지 약 1만여 명이 이동했다.
일명 '파독 간호사'로 불리던 이들은 지금까지 '외화벌이에 기여한 애국자'라는 집단의 이미지로만 기억돼 왔다. 역사 책 속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태극기를 흔들며 활주로에 서 있던 모습, 그 이면의 이야기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낯선 땅에서 이민자로서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돈벌이 외에 그들이 떠난 이유는 없었을까. 왜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이주노동을 시작해 외화벌이에 앞장 선 애국자라는 집단적 기억만으로는 이주 여성들 개개인의 삶의 편린들을 정확히 들여다 볼 수 없습니다. 제가 만나 뵙고 경험한 재독이주여성 공동체는 뜨거운 연대를 통해 스스로 노동의 권리와 삶의 자유를 확장해가는 해방된 여성들의 결정체였습니다."(김재엽 연출가)
이후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벌어진 일들을 가장 먼저 목격한 이들은 독일 신문에 보도자료를 보내고 교민모임을 결성, 독일 시민들과 연대한 거리행진도 전개했다. 연극의 모티브가 된 재독한인여성 송금희씨는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독일로 광주 소식을 가져왔을 때 정부에 배반당한 느낌이었습니다. 슬프고 원망스럽고 분노가 치솟아서 당시엔 무서울 게 없었죠. 포스터를 붙이고 전단지도 돌리고 서명운동을 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독일사회를 경험한 뒤 돌아갔던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여성은 '억압의 대상', '틀에 가둬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를 깨달은 재독한인여성들에게 '고향'은 더 이상 한국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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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별거냐. 지금 집이 고향이지."(연극 中 대사)
그렇게 독일과 한국, 두 개의 뿌리를 가진 ‘두 개의 심장’으로 살아내기 위해 이들은 언제나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1977년 결성한 재독한국여성모임은 현재까지 이어져 이주여성들이 겪는 노동환경과 문화적 차이, 국제결혼과 정치적 경험 등을 나누며 서로를 지원하고 격려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밖에 일본 대사관 앞 위안부 항의 집회, 세월호와 함께하는 베를린 행동 등 고국관련 활동에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어느 한 곳의 '고향', '집'의 경계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세계시민으로서의 삶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연극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다음달 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오는 12일에는 오후 3시 공연 후 한국을 찾은 재독 간호여성 3명이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된다. 이어 15일 저녁 7시에는 재독 한인 여성들의 삶을 기록한 에세이 낭독회가 열린다.
연극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무대 위 모습(왼쪽). 김재엽 연출가와 배우들, 연극의 모티브가 된 재독한인여성들이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는 모습(오른쪽)./사진=이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