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티그리스 강에서 만난 스승들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17.11.04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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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강연을 할 때마다 “여행지에 가면 그곳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라”는 말을 빠트리지 않는다. 그리고 가능하면 대화를 나눠보라는 말도 덧붙인다. 말이 통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생각만 있다면 손짓발짓으로도 소통이 가능하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은 나를 비춰보는 거울이 된다. 때로는 삶의 지혜를 배우기도 한다. 아나톨리아 반도의 고대도시 하산케이프를 찾았을 때도 스승 같은 두 명의 친구를 만났다.

티그리스 강과 고대도시 하산케이프/사진=이호준 여행작가티그리스 강과 고대도시 하산케이프/사진=이호준 여행작가


티그리스 강가에서 처음 만난 이는 압둘라는 이름을 가진 40대 남자였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카메라를 멘 사람이 와서 자꾸 들여다봤다. 그가 나중에 친해진 압둘라였다. “메르하바!” 그들 말로 인사를 했더니 대뜸 “Are you professor?”라고 물었다. 교수가 아니라 시인이고 여행작가라고 했더니 이번엔 카메라에 관심을 보였다.



하산케이프를 기록하고 있는 압둘라/사진=이호준 여행작가하산케이프를 기록하고 있는 압둘라/사진=이호준 여행작가
“프로들이 쓰는 카메라네요?”

‘프로’라는 말을 꽤 좋아한다 싶어서 농담으로 대답했다.



“카메라만 프로고 찍는 사람은 아마추어예요.”

압둘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친구였다.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5학년 중퇴. 직업은 무덤지기이다. 하지만 기록가이자 사진가이기도 하다. 일찍부터 유물 발굴 현장을 쫓아다니며 역사 지식을 익혔다. 그는 티그리스 강에 댐을 쌓는다는 정부 방침에 누구보다도 슬퍼했다. 유적이 물에 잠기면 자신의 삶도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글쓰기와 사진 찍는 것을 배워서 하산케이프에 대한 기록을 시작했다. 그렇게 틈틈이 쓴 것들을 모아서 한 권의 책자로 발간했다. 그걸 관광객에게 팔기 시작했는데 2,000권이나 팔렸다고 자랑했다. 다음에는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기록하겠다는 큰 꿈을 꾸고 있었다.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가난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어도 의지를 세워 끊임없이 한길을 달려온 한 사내의 성취가 거룩해 보였다.


압둘라와 함께 강가로 내려가는 순간 다리 저쪽에서 기묘한 보트가 나타났다. 커다란 타이어에 나무판자를 얼기설기 댄 말 그대로 수제보트였다. 압둘라에게 물었더니 티그리스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라고 설명해줬다. 아침에 그물을 쳤다가 점심 때 걷으러 오는데 지금이 마침 그 시간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강가로 나오기를 기다려 압둘라의 통역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알리라는 이름의 어부가 걷어낸 그물에는 물고기가 열 댓 마리 쯤 붙어있었다. 마치 은어처럼 생긴 물고기의 이름은 ‘샤’인데 가시가 많아서 주로 튀겨먹는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많이 잡은 건가요?”
“아뇨. 오늘은 조금 잡혔네요. 하지만 괜찮아요. 강에 있는 물고기가 어디 가겠어요? 내일은 많이 잡히겠지요.”

와! 이런 달관의 답변이라니. 강 하나가 통째로 어부의 수족관이 되었다는 생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사람은 그런 상황이면 먹고살기 힘들다고 징징거리기 마련인데.

잡은 고기는 1kg에 3리라에서 4리라 정도에 판다는 것이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000원 남짓인데, 그 정도로 생활이 될지 궁금했다. 그래도 어부는 연신 “No problem”이었다. 그가 아는 유일한 영어였다.

“댐이 완공되면 강이 사라질 텐데 어떻게 할 거예요?”
“이사 가야지 어쩌겠어요?”
“그래도 평생 배운 게 물고기 잡는 거라며, 먹고살기 힘들어질 텐데요.”
“음, 한국에 가서 살지요 뭐. No problem이라니까요.”

티그리스 강의 어부 알리/사진=이호준 여행작가티그리스 강의 어부 알리/사진=이호준 여행작가
그 정도면 정말 도인이었다. 자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댐이 완공되면 한국에 가서 산다길래 한국을 아느냐고 물으니 잘 안다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정말 한국을 좋아한다며 자신이 아는 사실을 줄줄이 설명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니까 괜히 해본 소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아무려나. 그 정도 낙천적인 성격이라면 어딜 가도 큰 마음고생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과 만나는 시간은 즐거웠다. 가볍게 나누는 대화 속에서도 세상을 사는 지혜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냥 지나갔으면 못 만날 사람들이었다. 여행은 살아있는 교과서고,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곧 스승이라는 경구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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