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과 달리 건설재개 판단이 19%포인트나 높게 나온 것은 ‘과속’ 논란이 끊이지 않던 탈원전 정책에 국민이 제동을 건 셈이기 때문이다. 탈원전 로드맵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핵심 공약이었다. 하지만 최소 2조6000억원에 달하는 매몰비용 등 건설중단에 따른 부정적 효과가 부각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정부는 현재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와 탈원전 등 에너지정책 전환은 별개의 사안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곤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사실상 탈원전 정책의 방향성을 결정할 가늠자 역할로 주목받아왔기 때문이다. 정부의 운신폭이 줄어들 가능성이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은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 결론은 탈원전 정책에 대한 국민 심판’이라고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등 또 다른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이르면 다음 달 발표하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달리 2019년 총선 이후 나오는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탈원전 정책 수정 압력을 받을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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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원전 정책에 대한 권고도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제출한 대(對)정부권고안에는 ‘중장기적으로 원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정부가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시민참여단 응답 비율은 53.2%였다.
반면 원전을 유지(35.5%)하거나 확대(9.7%)해야 한다는 의견도 45.2%에 달했다. 비록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서 ±3.6%포인트)를 벗어난 의견 차지만 무시하기는 어려운 비율이다. 탈원전 정책의 강도와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의미이다.
현재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크게 2가지다. 먼저 신한울 3·4호기와 천지 1·2호기, 천지 3·4호기 또는 대진 1·2호기 등 건설 중이거나 건설이 예정된 원전 6기 백지화다. 신한울 3·4호기와 천지 1·2호기 역시 이미 3400억원이 투자되는 등 건설이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있다.
노후 원전 수명금지도 논란이다. 국내 가동 중인 원전은 총 24기인데 2020년 월성 1호기를 시작으로 △2023년 고리 2호기 △2024년 고리 3호기 △2025년 고리 4호기·한빛 1호기 △2026년 월성 2호기·한빛 2호기 △2027년 한울 1호기·월성 3호기 △2008년 한울 2호기 △2029년 월성 4호기 등 11기가 줄줄이 수명이 다한다.
수명연장 금지는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 규제당국인 원자력안전위원회에 계속운전 신청을 하지 않으면 되는데 노조 및 지역주민 등과 갈등이 예상된다. 입법으로 해결할 경우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상황이 더 복잡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 교수는 “서프라이즈라고 할 정도로 예상보다 의견 차이가 크게 난 것이 사실”이라며 “시민참여단의 결론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탈원전 정책의 속도를 조절하는 방향으로 로드맵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도 “이번 결과는 장기적으로 볼 때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를 쓰자’ 전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라며 “사용후핵연료 등 남아 있는 원자력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