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철거왕 이금열’ 경찰 기록도 삭제, 도대체 왜

머니투데이 김민중 기자 2017.10.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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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적폐 재건축비리 ④-2]<솜방망이 처벌>입건 사실도 사라져, 검찰 송치도 안돼

[단독]‘철거왕 이금열’ 경찰 기록도 삭제, 도대체 왜


경찰의 과거 ‘철거왕 이금열’ 초기 수사 과정에서 수사기록 훼손 정황이 확인됐다. 누군가 수사를 은폐하려던 시도가 의심된다.

23일 검찰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2011년 특정범죄가중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이금열 다원그룹 회장을 형사 입건해 수사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수사 도중 이 회장의 입건 사실은 삭제됐다. 이어 경찰은 2012년 7월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이 회장을 검찰(서울서부지검)에 아예 송치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이 회장은 불기소(무혐의) 의견 송치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본지 취재 결과 실제로는 송치조차 되지 않았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경찰은 피의자를 수사하면 반드시 기소의견 혹은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해야 한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심각한 상황"이라며 "담당자는 공문서손괴 혹은 직무유기로 처벌받을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다원이앤아이를 통해 가재울4구역 재개발 사업장의 철거면적을 부풀리고 30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 등으로 집중 수사를 받았다.

하지만 송치 과정에서 '이 회장이 피의자였다'는 사실은 사라지고 대신 '바지사장' 격인 박모씨가 기소의견을 적용받았다.

공교롭게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넘기며 "이금열 회장이 다원이앤아이의 실 소유주다"라고 의견을 내는 '실수'를 한 것으로도 확인됐다. 그런 판단이라면 이 회장을 기소의견 송치하는 게 이치에 맞다. 범죄 정황은 충분하지만 일부러 이 회장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의심에 무게가 실린다.


공범 혐의를 받던 다른 사업체와 비교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경찰은 '철거면적 부풀리기'를 함께한 혐의로 A공영의 실소유주 김모씨에게 기소의견, '바지사장' 격인 다른 김모씨에게는 불기소의견을 달았다.

이 회장 외에도 경찰은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정비업자) 박모씨를 형사 입건(특정범죄가중법상 뇌물수수)해 수사하던 중 입건 사실을 지우고 송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박씨는 조직폭력 전과가 다수 있는 인물이다.



서부지검 관계자는 "당시 해당 사건과 관련해 (경찰에서) 총 16명이 넘어왔는데 이 회장과 정비업자 박씨는 빠져 있었다"고 밝혔다.

누가 어떤 이유로 이 같은 일을 벌였는지 관심이 쏠린다. 서울경찰청은 담당인 서대문경찰서에 문의하라고 답변했고 서대문경찰서는 "수사했던 담당자들에게 문의하라"고 밝혔다.

해당 사건의 주 수사관은 B경위(현재 서울지역 다른 경찰서 근무)였다가 2012년 2월 C경감(현재 강원지역 경찰서 근무)으로 교체됐다.



초반 수사를 맡은 B경위는 "이 회장과 정비업자 박씨를 킥스(KICS·국가 통합 형사사법정보 시스템)에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했다"며 "입건 사실을 지운 적이 없다"고 밝혔다. B경위는 "만약 입건 사실이 지워져 있다면 매우 심각한 범죄"라고 말했다.

후반 수사를 맡은 C경감은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당시 경찰은 '봐주기 수사'를 한다는 의혹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D총경(당시 광주경찰청 근무)이 서울까지 올라와 "이 회장과 정비업자 박씨를 수사하지 말라"고 수사팀에 압박을 가하다 옷을 벗은 일도 있었다. 수사기록 훼손 사실이 이 같은 분위기와 연관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다.



해당 사건을 넘겨받은 서부지검 역시 제대로 수사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 일부 피의자를 기소했지만 나머지는 무혐의나 참고인 중지 처분을 내렸다.

이후 관할도 아닌 수원지검이 첩보를 입수해 사건을 수사했고 이금열 회장의 1000억원대 횡령·뇌물공여 등 혐의를 밝혀냈다. 이 회장은 2015년 1월 징역 5년을 확정받고 복역 중이다. 하지만 현재 드러난 혐의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시각이 수사당국 안팎에서 나온다.

이 회장은 1990년~2000년대 철거업계를 평정해 철거왕으로 불리는 거물이다. 그와 관련된 '철거범죄 보고서'가 시민단체 등에 의해 수차례 발간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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