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라기│① 올해 추석에도 다시 일어날 일들

서지연 ize 기자 2017.09.2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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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라기│① 올해 추석에도 다시 일어날 일들


SNS를 통해 연재되는 웹툰 ‘며느라기’의 제목은 작품 속에서 ‘시댁 식구한테 예쁨 받고 칭찬 받고 싶은 시기’로 정의된다. 민사린은 시부모의 결혼기념일까지 챙기며 점수를 따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는 오히려 그를 며느리라는 역할에 옭아맨다. 시어머니는 가족이 모두 모인 식탁에서 그에게 ‘남은 사과를 먹어치우자’고 말하고, 갈치조림의 갈치 대신 무를 건네기도 한다. 또한 민사린이 해외 출장을 가야 하는 상황에 대해 “꼭 사린이 네가 가야 하는 게 아니면 못 간다고 하고 다음에 가면 안 될까? 결혼한 지 얼마 안됐는데 벌써 집을 비우면 어떡해. 새신랑이 밥도 못 얻어먹으면 어떡하니”라고 말한다. 반면 그의 아들 무구영은 ‘가장이니까 책임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사린과 무구영은 대학동기로 만나 각자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의 결혼 전 관계는 아마도 동등했을 것이다. 그러나 연애시절 결혼한 자신들의 모습을 상상할 때 민사린은 아이와 함께 있는 무구영의 모습을, 무구영은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있는 민사린의 모습을 떠올렸다. 여성은 배우자와 새로운 가정을 만들 것을 상상하는 반면, 남성은 자기 부모를 섬기는 배우자의 모습을 상상한다. ‘제사’ 에피소드에서 무구영 가족의 제사를 지낸 후 두 사람의 대화는 결혼 후 남녀의 입장차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민사린이 제사 준비를 도와주지 않은 무구영을 책망하자, 무구영은 “내가 (제사 준비를) 안 하다가 갑자기 하면 뭐라고 생각하시겠어. 네가 시켜서 하는 거라고 생각하실 거 아니야”라고 말한다. 결혼 후 민사린은 시댁에 와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시할아버지’의 제사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지만, 무구영에게는 아내가 겪는 극심한 변화보다 가족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더 부담스럽다. 남편과 그의 가족은 어떤 것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신 아내이자 며느리가 된 여성을 그들의 방식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 과정에서 그 여성이 본래 어떤 인물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모두 지워진다. 이는 민사린이 ‘내가 나를 지키지 못했던 순간들’이라고 기억할 만큼 폭력적이다.



무구영이나 그의 가족이 특별히 나쁜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다. 처음에 민사린은 당연히 며느리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무구영과 그의 가족은 이런 가족관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시대가 바뀌고 부부의 생활 방식도 바뀌었지만 여성과 남편의 가족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것을 아내이자 며느리가 혼자 바꾸기에는 많은 부담이 따른다. 민사린의 형님은 시동생인 무구영에게 ‘자기 인생 사시는 분’이라는 평가까지 들어가며 겨우 시댁 식구와의 선을 그었다. 그렇게까지 할 수 없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불합리한 부분들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 남편부터가 아내보다는 시댁 식구의 입장에 서는 경우가 많다. 무구영은 민사린에게 “부모님 만나는 날만 그냥 그렇게 있어 달라”고 요청했고, 민사린의 선배는 ‘시댁 행사 후에는 모든 가사 노동을 남편에게 시키는’ 차선책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이 참고 희생할수록 문제는 더욱 커진다. ‘제사’ 에피소드 속 어린 아이가 그린 그림에서 여성들은 동분서주하며 노랗고 동그란 전을 만들어낸다. 반면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세 명의 남성들은 웃고 즐기고 있다. 제사는 그 남자들의 조상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준비는 며느리들이 한다. 그리고 어린 아이마저도 이를 자연스럽게 학습한다.

그럼에도 여성들의 서로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제사 준비를 떠맡았던 민사린은 형님에게 날카로운 말을 쏟아냈고, 그가 마음에 걸려 전화를 했던 형님은 ‘제사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도 민사린에게 미안해한다. 제사를 비롯해 온갖 가사 노동을 가장 오랫동안 도맡아 온 시어머니는 혼자 아픈 몸을 추스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사는 여성들이 서로에게 가지는 미안함 때문에 유지되는 경우가 많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서적, 육체적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들의 몫이 된다. 이에 비해 남성들이 느끼는 부담은 훨씬 적다. 민사린이 시어머니의 생신 전날부터 마음을 졸였던 것과 달리, 무구영은 “나도 사린이처럼 장인 장모님한테 좋은 사위가 되어야 할 텐데. 이번 주말에 처가댁에 가자. 같이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라고 말한다. 제사로 인해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불거진 후에도 무구영은 장모와 노래방에 가고, 장모의 가게에 지인들을 불러 모으는 것으로 민사린의 마음을 풀어주려 한다. 여성은 제사를 비롯한 집안의 대소사에서 가사 노동 전반을 떠맡고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전통적 가족관 속 자신의 낮은 위치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게 되지만, 남성은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거하게 한 턱 쏘는 것만으로도 ‘좋은 사위’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성의나 노동의 양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문제다.



결국 ‘며느라기’는 부부의 수평적 관계와 며느리라는 수직적 지위는 결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품 속에서 ‘며느라기’는 사춘기나 갱년기에 비유됐지만, 사실 이것은 여성만이 감수해야 하는 일방적인 재사회화에 가깝다. 재사회화의 사전적 정의처럼 ‘짧은 시간 안에 하나의 역할을 버리고 다른 역할을 취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여성들은 본래의 자신 대신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선택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압력에 시달린다. 그리고 ‘며느라기’는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분명히 불쾌하지만 화내기엔 애매한’ 상황들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여성들에게 자신의 일이기도 한 이 모순에 대해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정말 민사린이라는 여성이 운영하는 SNS 계정처럼 보이는 ‘며느라기’의 댓글에서 여성들이 벌이는 토론은, 그래서 작품만큼이나 의미가 있다. 댓글에는 여성들의 경험담이나 해결방법, 비판 또는 응원까지 넘쳐난다. 지금도 누군가의 며느리이자 딸인 여성들에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출장’ 에피소드가 마무리 된 후, 한동안 뜸했던 민사린의 SNS 계정에는 다시 일상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올라온 게시물은 ‘2017년 10월 1일 행복한 연휴 첫 날 찾아오겠다’는 예고다. 결혼 후 첫 명절을 맞이하는 민사린은, 그리고 추석을 코앞에 둔 여성들은 어떤 풍경 속에 있을까. 우리 모두가 떠올리는 바로 그 그림은 아니길 바란다. 그것은 결코 모두가 행복한 모습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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