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금 10만원 넘게 내면 '法 초월 친구'

머니투데이 박준식 기자 2017.09.2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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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금지법 1년]공무원 동창 결혼하는데 봉투엔 얼마…'법과 정서' 사이의 갈등, 부득불 관계 정리의 기준

축의금 10만원 넘게 내면 '法 초월 친구'


# 직장인 박민주(가명)씨는 졸업 5년 만에 금융위원회에 재직 중인 공무원 친구로부터 결혼 청첩장을 받았다. 졸업 이후로 소식을 전하지 않던 친구가 갑자기 카카오톡 메신저로 결혼을 알린 것이 사실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그래도 대학 동창이고 자신이 금융사에서 일하는지라 10만원을 축의금으로 낼까 고민하던 박씨는 좋은 핑계가 생각나서 메신저로 응답했다. "친구야, 오랜만에 연락줘서 고마워. 그런데 내가 금융사에 다니고 있어서 법 한도와 우리 회사 내규에 따라서만 성의 표시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답을 보냈고, 박 씨는 5만원을 봉투에 담아 보냈다.



# 공기업에 다니는 김도현(가명)씨는 사법부에서 일하는 친구로부터 결혼 소식을 들었다. 둘 다 법대를 졸업하고 신림동 고시촌에서 3년 넘게 기거하며 공시와 고시를 준비하던 사이다. 서로 어려울 때 밥값을 나눠내며 미래를 응원했던 친구라 기쁜 마음이 더했지만 축의금을 두고는 고민이 컸다.

"사실 제가 회사 법무팀에 있고 가끔 일로도 간접적으로 연관되는 사이라 10만원 이상을 하기가 꺼림칙했어요. 하지만 그 친구와 제가 10만원짜리 관계는 아니죠." 김씨는 친구에게 결혼식장에서 10만원 봉투를 내밀었고 친구 내외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 저녁 식사를 사고 혼수에 보태라며 10만원짜리 상품권도 더해 건넸다.



김영란법 시행 1년을 맞아 돌아본 친구사이의 축의금 관행은 위 사례처럼 극단적이진 않지만 크고 작은 허례허식을 줄였다는 평가를 얻는다. 법 시행 이전까지 '아는 사이(3만원)' '친구 사이(5만원)' '절친 사이(10만원 이상)'이던 공식이 부득불(不得不)한 관계를 거품 없이 정리하는 기준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기업들은 일단 경조사에 필요한 화환값과 접대비, 경조사비 지출이 크게 줄었다는 입장이다. S그룹 계열사 대관 담당자는 "원래 법 시행 전까지는 결혼이나 승진, 출산 등을 축하하기 위해 보내던 화환값이 한 달에 많게는 200만~300만원까지 들었는데 최근엔 이 비용이 수십만원 정도로 줄었다"며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5만원 안팎의 화환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경조사비 지출은 불요불급한 경우 기업들의 부담에서 점차 개인들의 차지로 변해가고 있다. H그룹 관계자는 "법이 경조사비를 건당 10만원으로 한정하고 있고 이조차도 영수증을 발행할 수 없는 현금 마련이 쉽지 않아 재무부서에서 예산편성을 까다롭게 하고 있다"며 "김영란법 시행 초반에는 개인적으로 돈을 보태 경조사비를 내기도 했는데 이 부담이 너무 커서 최근에는 회사 지원 불가를 이유로 지출을 지난해의 절반 이하로 줄여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전체 경향과는 반대로 불법을 감수하면서까지 관계를 강화하려는 일부도 존재한다.

D그룹 계열사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초반에는 대부분 법을 지키려는 경향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식사와 선물을 중심으로 준법의식이 다소 흐트러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식사의 경우 2차 3차 술자리를 잇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한 끼 3만원 한도는 사실상 없어졌고, 선물은 드러나는 5만원 이상의 제품보다는 그 이하 가격의 소소한 상품을 자주 하는 식으로 연대감을 강화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관계가 깊은 사이의 경조사비는 해당 장소가 아니라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20만~30만원 안팎을 주고 오히려 '법을 초월한 사이'라는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 정서상 선물을 아예 하지 않을 수 없고, 50만원 이하의 선물을 뇌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융통성 있게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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