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 합격했는데 변호사는 아냐…왜?

머니투데이 박보희 기자 2017.09.26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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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첫 사시출신 양심적 병역거부자 백종건씨

백종건씨백종건씨


"6년 동안 변호사로 일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국선이나 무료변론 사건도 꽤 했어요. 그때 인연을 맺어 교도소까지 연락해 도움을 요청한 분도 계셨죠. 지금도 도와달라는 연락이 오는데 조언 정도는 가능하지만 변호사 등록이 안돼 있으니 한계가 있어요. 그게 제일 안타까워요."

한때 변호사였던 백종건씨는 변호사 등록이 취소된 데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백씨는 지난해 1년6개월의 실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이유는 '병역법 위반'.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한 백씨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다. 현행 변호사법은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고 집행이 끝난 지 5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변호사 자격을 주지 않는다. 지난 5월 출소한 백씨는 그래서 지금은 변호사가 아니다.



사법시험 합격자 가운데 첫번째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백씨를 머니투데이 '더엘'(the L)이 서울 서초동의 한 법률사무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백씨는 출소 후 변호사가 아닌 사무 업무 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백씨는 어릴 때부터 법조인을 꿈꿨다. 수년간의 노력 끝에 그 꿈을 이뤘다. 눈 딱 감고 4주 군사훈련만 받으면 법무관으로 '문제'없는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병역거부를 택했다.



"고민 많이했죠. 지금의 어려움은 견딜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에 대해 감옥에서도 고민했고, 지금도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제 삶과 믿음에 대한 문제니까요. 계속 고민했는데 답은 변하지 않더라고요. 이게 제 신념이고 믿음이에요. 일종의 타협을 해서 군대에 갔다면 더 큰 고통 속에서 살고있을 거에요. 편의에 따라 신념을 바꿀 수 있다면 그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거겠죠. 전 평생 후회하며 사는 것보다 견뎌야 하는 것은 견뎌내고 세상을 바꾸는 디딤돌이 되고 싶었어요."

피하려면 피할 수 있었다. 학창시절,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백씨가 4살 때 감옥에 다녀온 아버지는 유학을 권했다. 같은 종교를 가진 친구들은 중학교를 그만둬 병역 면제자가 되기도 했다. 백씨가 택한 것은 정면돌파다.

"누군가는 계속 문을 두드려야 열릴 것이란 생각이 있었고요. 대체복무제가 시행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어요.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저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거에요. 그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 때문에 아직도 '그럼 군대 다녀오면 비양심적이냐'고 묻는 분들도 있어요. 충격적이죠. 그래도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앞으로 더 바뀌겠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원하는 것은 '대체복무제'다. 군대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국방의 의무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군대보다 긴 기간 동안, 군대보다 더 힘든 일을 맡겠다고 이들은 말한다.

"교도소로 대체복무 왔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병역거부자들은 교도소 내 중증 치매환자 간병 등 다른 수감자들이나 교도관들도 꺼리는 일을 많이 해요. 군대 면제의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니에요. 막상 감옥에 가는 것보다 가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감, 다녀와서 직업선택부터 안정적인 삶을 살기 어려운 점이 더 힘들죠.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 함께 살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자는 거죠."

백씨는 다시 변호사가 되기를 희망한다. 백 변호사는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변호사 등록을 신청했다. 서울변회는 '적격'의견을 냈다. 대한변협은 등록심사위원회 의결을 거쳐 백씨의 변호사 등록 여부를 결정한다. 백씨는 대한변협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백씨는 변호사법 해석에 따라 변협의 재량권이 있다고 본다. 변호사법 제8조는 '대한변협은 변호사 등록을 신청한 자가 결격 사유에 해당하면 등록을 거부할 수 있다'고 돼있다. '등록을 거부해야 한다'가 아닌 '거부할 수 있다'고 돼있는 만큼 변협이 등록을 받아줄 수도 있다는 게 백씨의 생각이다.

"변호사회관에 가면 '정의의 붓으로 인권을 그린다'는 문구가 적혀있어요. 변호사는 정의와 인권을 고민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약자의 권익을 수호하고 인권을 옹호하는 역할'이요. 이번 문제는 단지 저 한 사람이 아닌 인간의 존엄과 평등, 변호사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법원에서는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늘고 있어요. 사회가 변하고 있는거죠. 이제 '인권의 수호자'로서 앞서나가는 변협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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