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in]잠수함 타고 수십m 물 속으로...승조원 수중생활, 잠수함 운용 25년 만 첫 공개

머니투데이 오세중 기자 2017.09.17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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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르포]해군 강정기지에서 잠수함 잠항 훈련기...바다 깊은 고요함 속 긴장감 '팽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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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전 제주민군복합항에 정박하고 있는 장보고함(앞쪽)과 이억기함이 취재진을 맞았다./사진=해군 제공지난 13일 오전 제주민군복합항에 정박하고 있는 장보고함(앞쪽)과 이억기함이 취재진을 맞았다./사진=해군 제공


"충수!"

함장의 외침이 들리자 연이어 기관장과 승조원들이 '충수'를 복창한다. 충수는 잠수함 내부에 있는 탱크에 물을 채워 1200톤의 잠수함을 음성부력으로 만드는 것이다. 잠항이 시작된다.

'출항' 구호와 함께 정박하던 잠수함이 제주 해군 강정기지에서 떠난 지 40여분, 기지와의 거리는 7.5㎞. 드디어 본격적인 1200톤급 잠수함 1번함 장보고함 승조원들의 수중생활의 시작을 알렸다. 함수 부분이 기울어지면서 수면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한 군 당국자는 "정박해 있는 잠수함 내부를 들어가 본 적은 있지만 실제 잠항을 해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해군은 지난 13일 장보고함이 운용을 시작한 지 25년만에 처음으로 실제 잠항 상황을 언론에 공개했다.

갑판요원들이 입항 준비를 위해 수직사다리를 이용해 함수 갑판으로 이동하고 있다. 취재진들 역시 이 함교탑을 통해 잠수함 내부로 들어갔다. 함수 중간 부분에 위치한 해치와 수직 사다리는 잠수함 내부에서 외부로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높이는 약 8m, 수직사다리 통로의 원통은 지름이 약 1m 가량으로 협소했다./사진=해군 제공갑판요원들이 입항 준비를 위해 수직사다리를 이용해 함수 갑판으로 이동하고 있다. 취재진들 역시 이 함교탑을 통해 잠수함 내부로 들어갔다. 함수 중간 부분에 위치한 해치와 수직 사다리는 잠수함 내부에서 외부로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높이는 약 8m, 수직사다리 통로의 원통은 지름이 약 1m 가량으로 협소했다./사진=해군 제공
앞서 강정기지에서 취재진들은 잠항 체험을 위해 사람 한 명 간신히 들어갈 만한 약 8m 높이의 함교탑(구멍 지름 약1m)을 통해 잠수함 내부로 승선했다. 잠수함 내부는 통로에 한 두 명이 지나다닐 정도로 협소했다. 잠항이 가능한 해역까지 나오는 항해 중 수면 위의 바다가 잠수함에 부딪치는 '철썩' 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외부 상황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이마저 잠항이 시작되자 고요함만이 가득했고, 긴장감이 흘렀다.



부함장은 "잠항을 시작하는 훈련이 적게는 한 달 가량 진행된다"며 "세탁, 흡연, TV, 휴대폰 사용도 불가한 해저에서 한 달 동안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햇빛은 물론 외부와의 완전한 차단을 의미한다. 오롯이 적만을 바라보고 경계태세에 돌입하는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바다 속에서 음파탐지 등으로 작은 소음으로 위치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세탁기를 돌리지도 못한다. 승조원들은 세탁물을 봉지에 밀봉해 입항 후 세탁더미를 가지고 집에 간다고 했다. 모터와 엔진 소리가 간간히 들릴 뿐이었다. 적막 그 자체다.

장보고함에 타는 승조원은 총 40명. 그러나 침대도 33개 뿐이라 3명 중 1명은 당직을 서며 이른바 '돌려막기'로 잠을 청한다. 그러다보니 서로 돌려쓰는 침상이 식을 날이 없어 '핫벙커'(Hot Bunker)라고 부르기도 한다.


길이 1.8m라는 침대에 눕자 발이 끝에 닿는다. 베게를 베면 실제 사람이 간신히 누워 옆으로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다. 관 속에 누워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 승조원은 "그나마 키가 좀 크면 다리를 접고 자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승조원이 침상(침대)에 누웠다. 길이가 180m라고 하지만 170 중반대 키 정도가 들어가기에도 좁았다. 이마저 승조원 수와 침대갯수가 많지 않아서 서로 '돌려막기'식으로 쓰고 있다. /사진=해군 제공한 승조원이 침상(침대)에 누웠다. 길이가 180m라고 하지만 170 중반대 키 정도가 들어가기에도 좁았다. 이마저 승조원 수와 침대갯수가 많지 않아서 서로 '돌려막기'식으로 쓰고 있다. /사진=해군 제공
잠수함에 들어와서 수중 깊은 곳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물과 공기도 제한적이다. 해수를 정화한 물로 씻고, 물 절약을 위해 샤워도 주 1회로 제한된다. 물티슈를 이용해 몸을 닦기도 한다.

들이마시는 산소도 제한적이다. 잠수함 내부의 대기 상태를 일정 수준 유지하기 위해 잠항시에는 이산화탄소(CO2)를 제거하는 화학제가 사용돼 시스템에서 걸러져 호흡에 필요한 산소상태를 유지한다.

부함장이 설명을 이어가던 중 갑자기 함장의 "적 항공기 접촉, 비상~!" 외침 소리가 해저의 적막을 깼다. 가상 적 항공기 접촉 훈련을 알리는 것이다. 승조원들의 '비상' 복명 복창과 함께 장보고함의 긴급잠항 절차가 시작됐다. 승조원들이 함수의 어뢰발사대쪽으로 뛰어와 무게중심을 바꾼다. 빠르게 더 깊은 해저로 잠항하기 위해서다. 잠수함이 급격하게 함수부분으로 기울어졌다. "15m, 17m, 20m..." 함장의 수심 조정 명령이 떨어진다. 15m에서 유지되던 잠수함은 함수 부분부터 급격하게 빨려들어가며 수십미터의 해저까지 내려갔다.

이어 적 군함을 인식하고 어뢰로 조준한다. '어뢰발사' 명령과 함께 목표물을 향해 어뢰가 발사되고 명중에 성공시키면서 가상 훈련도 종료됐다.

장보고함 김형준 함장은 "해군 잠수함부대는 지금 당장 명령이 떨어져도 적진에 침투해 임무를 완수할 준비가 돼 있다"며 "적 잠수함을 반드시 격침시키고,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을 지켜내겠다"고 말했다.

다시 수면 가까이 오르고 잠망경이 올라간다. 잠만경만이 유일하게 물 바깥 세상을 인식할 수 있는 도구다. 쾌청한 날씨탓인지 철렁이는 수면 위의 수평선 끝까지 한 눈에 들어왔다. 김 함장은 "잠망경을 통해서 상황을 파악하는데 날씨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지만 선명한 날씨에는 수십㎞까지 목표물 확인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기지로 회항하는 잠수함의 함교탑에 올랐다. 잠수함은 갑판을 드러낸 채 하얀 물살을 가르며 망망대해를 유유자적했다. 함교탑에서 내려다 본 바다는 정말 아름다웠다. 그러나 훈련에 돌입하면 한달 동안 꼼짝없이 바다 속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대한민국 수호에 여념이 없는 승조원들의 노고를 생각하니 이 감상이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한 승조원은 "밀폐된 공간에서 항상 긴장된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특히 장기간 가족과 떨어져 연락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이 힘들다"면서도 "가장 위험한 곳에서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임무를 수행한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해군은 209급 잠수함 9척 외에도 2주 이상 잠항이 가능하고 적진 깊숙이 들어가 지상 핵심시설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214급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다.

이달 진수된 214급 잠수함 신돌석함은 인수시험평가를 거쳐 내년 말 해군으로 인도되고, 전력화 과정 후 2019년에 작전 배치될 예정이다. 아울러 해군은 "2020년대 초반 우리 기술로 설계한 3000톤 잠수함을 도입할 계획"이라며 "최근 위협이 커지고 있는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대해 3000톤급 잠수함이 가장 효과적인 대응수단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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