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경쟁 끝, 이젠 '한 끗 차이'…"취업된다면 화장도 하겠어요"

뉴스1 제공 2017.09.14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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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청년실업률 9.4% 최악…취업박람회 찾는 청춘
"그래도 대기업" 장사진…텅텅 빈 중소기업 부스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고용노동부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잔디마당에 개최한 '2017 대한민국 청년일자리박람회'를 찾은 한 청년이 기업들의 채용일정이 빼곡히 적힌 채용공고 게시판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다.2017.9.14/뉴스1© News1 최동현 기자고용노동부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잔디마당에 개최한 '2017 대한민국 청년일자리박람회'를 찾은 한 청년이 기업들의 채용일정이 빼곡히 적힌 채용공고 게시판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다.2017.9.14/뉴스1© News1 최동현 기자


"이젠 어디라도 좋으니 취업 좀 하고 싶네요. 곧 하반기 공채도 시작하니까. 정보도 얻고 미리 인사 담당자에게 눈도장도 찍을 겸 왔어요."

'무뎌지면 무너진다'라는 각오를 책상에 써 붙이고 취업준비에 매진한다는 한모씨(29)는 기업들의 채용일정이 빼곡히 적힌 채용공고 게시판을 찬찬히 바라봤다. 혹시 모를 즉석 면접을 위해 말끔하게 정장도 입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1년이 넘도록 번번이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는 한씨는 "늘 대기업만 지원했지만 올해에는 중소기업에도 도전할 생각"이라며 "욕심만 부리다가 나이가 더 들어버리면 평생 실업자로 살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에 잠이 오질 않는다"고 토로했다.

고용노동부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잔디마당에 개최한 '2017 대한민국 청년일자리박람회' 행사장에는 이력서를 손에 꼭 쥐고 기업 부스를 찾아다니는 20~30대 청년으로 가득 찼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날씨에 정장 차림으로 이력서를 쓰던 이모씨(24·여)는 "올해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취업준비를 거의 하지 못해 불안한 마음에 박람회를 찾았다"고 말했다.

취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은 있지만 정작 희망하는 직무는 결정하지 못했다는 그는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으면 미래에 대한 갈피가 잡히지 않을까 희망한다"며 "혹시 이번 기회에 덜컥 취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며 웃었다.

◇스펙 경쟁 끝, 화장에 구두까지…청년 "서글픈 현실"


취업박람회에는 216개의 기업 부스 외에도 '컬러 이미지 컨설팅', '메이크업·헤어 컨설팅', '스트레스 컨설팅', '구두 컨설팅' 등 부가적으로 취업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부스도 설치됐다.

구직자의 이미지에 알맞은 구두를 추천해주고 있다는 한 상담사는 "요즘 취업시장 트렌드는 스펙이 아니라 '한 끗' 경쟁"이라며 "토익·자격증·학점 등 누구나 다 가진 것 외에 나를 돋보일 수 있도록 만드는 '무엇'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비슷한 스펙을 가지고 있다면 면접관이나 인사 담당자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남길 수 있는 '한 끗'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한 구직 여성에게 메이크업 기술을 설명해주던 상담사 A씨도 "청년실업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만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청년들은 높은 스펙을 쌓고 있다"며 "동등한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남들과 돋보이는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다면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청년들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는 입장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면접용 헤어스타일을 상담받고 나온 박모씨(27)은 "취업을 위해서 머리 모양까지 준비해야 한다는 게 우습다"고 말했다.

메이크업 상담을 받으려는 구직자가 몰린 탓에 30분을 기다려서야 상담을 받았다는 그는 "평소에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을 알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이런 준비까지 해야 할 정도로 취업이 어렵다는 것을 통감한다"고 전했다.

통계청이 13일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실업률은 9.4%를 기록했다. 지난 1999년 8월(10.7%) 이후 18년 만에 최대치로 치솟은 셈이다.

면접 상담을 위해 번호표를 뽑고 대기석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던 박민영씨(31·여)는 "경력직으로 이직을 하기 위해서 지난해 퇴사를 결정했지만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며 "다시 다니던 회사로 돌아갈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14일 제주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2017 청년취업 일자리박람회 JOB-ARA FESTIVAL’에서 구직자들이 면접 메이크업 컨설팅을 받고 있다. 제주대 LINC플러스사업단 주최로 열린 이번 박람회는 도내·외 공기업은 물론 관광업계, 금융업계, IT업계 등 45개 기업이 참여했다.2017.9.14/뉴스1 © News1 이석형 기자14일 제주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2017 청년취업 일자리박람회 JOB-ARA FESTIVAL’에서 구직자들이 면접 메이크업 컨설팅을 받고 있다. 제주대 LINC플러스사업단 주최로 열린 이번 박람회는 도내·외 공기업은 물론 관광업계, 금융업계, IT업계 등 45개 기업이 참여했다.2017.9.14/뉴스1 © News1 이석형 기자
◇청년실업률 최악이지만…'대기업 온탕·중소기업 냉탕' 현상 여전해

최악 수준의 청년실업률에도 청년들의 '대기업 선호 현상'은 사라지지 않은 분위기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대기업 부스는 직무상담이나 채용정보를 듣기 위해 몰린 구직자들로 장사진을 이뤘지만 비교적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 부스는 썰렁한 공기만 감돌았다.

한 대기업 유통회사 부스는 몰려든 구직자를 일일이 상대할 수 없어 간이의자를 동원해 인사담당자가 '강연'에 나서는 진풍경이 벌어졌지만 중소기업이나 제조업 분야 기업이 몰린 부스는 좀처럼 구직자가 찾지 않아 인사담당자가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친구와 함께 박람회를 찾았다는 김모씨(24·여)는 이날 세 기업의 부스를 찾아 직무 상담을 받고 채용정보도 챙겼다. 모두 대기업이었다. '중소기업도 둘러볼 생각이 없느냐'는 말에 김씨는 "중소기업 중에서도 '강소기업'이라고 불리는 좋은 곳이 많다는 것은 안다"면서도 "많은 기업 중에서 몇 군데를 고르다 보니 아무래도 중소기업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은 사실"이라고 답했다.

구직자를 상대로 면접 상담을 해주던 한 컨설턴트는 "잘 찾아보면 대기업 못지않은 처우나 근무환경을 제공하는 강소기업이 많은데 거의 찾지 않는다"며 "청년실업률이 갈수록 높아지지만 청년들의 눈높이는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도 "구직자는 갈수록 많아지는 반면 대기업의 수는 정해져 있다"면서도 "극심한 청년실업률 속에서 취업에 성공하려면 시야를 넓게 가지고 다양한 정보를 훑어보는 게 오히려 스펙을 쌓는 것보다 유용한 강점이 될 수 있는데 여전히 '대기업 선호론'이 우세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전했다.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잔디마당에 개최된 '2017 대한민국 청년일자리박람회'에 마련된 기업 부스들. 대기업 부스에는 청년들이 가득 몰렸지만 중소기업 부스는 텅텅 빈 모습이다.2017.9.14/뉴스1© News1 최동현 기자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잔디마당에 개최된 '2017 대한민국 청년일자리박람회'에 마련된 기업 부스들. 대기업 부스에는 청년들이 가득 몰렸지만 중소기업 부스는 텅텅 빈 모습이다.2017.9.14/뉴스1© News1 최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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