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파업

강명석 ize 기자 2017.09.1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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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파업


MBC와 KBS가 파업했다. 그리고 익숙한 일들이 반복된다. MBC ‘무한도전’이 지난주 결방했다. KBS 예능 프로그램 제작에는 부장급들이 투입됐다. 5년 전에도 ‘무한도전’은 24주간 결방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파업에 나선 노조원들 일부는 해직되거나, 좌천됐다. 일부는 MBC가 운영하는 스케이트장을 관리하기도 했다. 노조원들은 사측에 다시 항의했다. 회사의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도 썼다.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파업에 다시 나선다. 지난 10년, 공정 방송을 외치던 두 공영방송사의 노조원들은 한 번도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또 파업을 한다. 그 점에서 이번 파업은 언론인,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해 묻는 듯하다. 10년 동안 같은 일이 반복됐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승리는 없고 좌절만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그럴 듯한 직장에서 일할 수 있다. 사측에 잘 보이면 출세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그들은 반복된 패배와 좌절을 감당하는가.

물론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바뀐 대통령은 당선 전 MBC의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지난 두 대통령보다 도덕적으로 낫다면,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 법을 무시하거나 비상식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을 거라는 신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시 KBS 정연주 사장을 끌어내리기 위해 대통령에게 주어진 KBS 사장 ‘임명권’을 파면도 가능한 ‘임면권’으로 자의적 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소한 그와 같아서는 안 된다. 권력 남용은 공영 방송의 훼손보다 더 큰 사회적 해악을 끼칠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현 MBC, KBS 사장이 경영 중 불법 행위가 없었는지 따져보는 것이 전부다. 최근 김장겸 MBC 사장이 부당 노동행위로 체포영장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실제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 해도, 그것이 사장에서 물러나야 할 만큼의 일인지에 대해서는 역시 법원의 판결이 필요하다. 지금 두 방송사 노조원들의 파업은 그 모든 것을 감당하고, 기다리며 하는 것이다.



공영방송이 공정하고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현재 MBC 사측이 파업에 대해 들고 나온 논리 또한 ‘공정성 훼손’이다. 관심을 갖고 자세한 상황을 살펴보기 전까지는, 양쪽의 논리가 모두 그럴 듯하게 들릴 수도 있다. MBC와 KBS 기자들도 ‘박사모’ 집회에서는 환영받을 수 있다. 다만 이번 파업은 논리 이전에 시간이 정의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10년 동안 보도하고자 했던 기사들이 묵살당했고, 10년 동안 동료들이 하나둘 떠나갔으며, 10년 동안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사이 새로 들어온 직원들은 취재 현장에서 방송사 이름을 가려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런데도 버티며 ‘공정방송’을 외쳤다. 회사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리기 위해 영화까지도 만들었다. 지금 그들의 파업은 10년 동안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다시 한 번 힘을 짜내서 하는 것이다. 단지 양쪽의 의견 중 하나로만 받아들이기에는, 그 10년간의 실천이 크다.

지난 10년 사이, MBC와 KBS는 방송산업의 절대적인 자리에서 내려왔다. JTBC ‘뉴스룸’은 역사적인 특종을 보도했고, 어떤 종편 채널들은 두 공영방송사보다 드러내놓고 ‘편’을 드는 보도를 하기도 한다. MBC의 예능과 드라마 연출자들은 상당수 다른 채널로 옮겼다. 시청자들에게는 MBC와 KBS의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말고도 정말 많은 선택지가 있다. 그러니 MBC와 KBS를 안 보면 그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여기에 어떤 당위를 강조한다 해도 MBC와 KBS의 정상화가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두 방송사의 파업 이유는 이미 수많은 자료가 제시됐으니, 궁금하다면 그것들을 읽어보면 될 일이기도 하다. 다만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 좌절을 반복하며 어떻게든 신념을 실천한 이들의 노력이니 말이다. 지난 10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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