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노조의 거침없는 요구, 어디까지 들어줘야 하나

머니투데이 이학렬 기자 2017.09.13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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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선정 개입·임원 해임 요구, 도 넘은 '노치'…감정노동자·여성금로자 근로조건 개선엔 사측도 부응

 KB 금융노동조합협의회 조합원들이 12일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절차 규탄 및 후보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 사진=뉴스1 KB 금융노동조합협의회 조합원들이 12일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절차 규탄 및 후보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 사진=뉴스1


금융권 노조의 요구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임금 인상 등 근로 조건을 넘어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CEO(최고경영자) 선임이나 임직원 인사권 등에 개입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금융업계에선 KB금융그룹 계열사 노조로 구성된 KB금융노동조합협의회(이하 KB노협)가 윤종규 KB금융 회장 겸 KB국민은행장의 회장 연임에 대해 찬반 투표를 실시해 연임 반대를 공식 선언한데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다. 박인규 DGB금융그룹 회장 겸 대구은행장처럼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등 특별한 잘못이 없는 상황에서 직원들 인기 투표 결과를 토대로 회장 선임 과정에 압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도로 읽히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인사는 “윤 회장 재임 시절 KB금융이 리딩뱅크 자리를 되찾는 등 성과가 좋은데 노조가 설문조사까지 실시해 ‘윤종규 흔들기’에 나선 이유를 모르겠다”며 “이는 주주 의사를 무시하고 정해진 지배구조에도 반기를 드는 행위”라고 말했다.
경찰 조사를 받고 있긴 하지만 박 회장에 대한 노조의 사퇴 요구도 지나치다는 의견이 많다. 아직 기소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할 뿐만 아니라 CEO 해임과 선임 결정권을 가진 사외이사들의 역할에 대한 월권행위라는 지적이다.

BNK금융그룹 부산은행 노조가 김지완 BNK금융 회장 내정자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것도 도는 넘어섰다는 시각이다. 부산은행 노조가 내부 인사를 선호할 수는 있지만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해진 절차로 추천된 회장 내정자에 대해 사퇴하라는 요구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KB국민은행 노조는 특정 임원의 해임을 요구해 인사권 개입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KB국민은행 노조는 이모 부행장(계열사 대표)과 김모 본부장(지역영업그룹 대표)에 대해 노조 선거 개입을 이유로 해임을 요구해 관철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노조가 해임을 요구한 임원을 실제로 해임하면 노조에 인사권을 내준 꼴”이라며 “인사권 개입을 받아주니 노조 요구가 점점 더 과도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KB노협이 참여연대 출신의 하승수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추천한데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노조가 경영에 간섭하겠다는 뜻으로 불가하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사외이사 추천권은 소액주주의 권리이기 때문에 노조 요구가 불합리한 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직원들도 우리사주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외이사 추천은 법적으로 보장된 주주 권리”라며 “다만 노조가 추천한 인물이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로 선임되느냐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금융노조가 여성노동자와 감정노동자에 대한 권익증진을 위해 노력한 것에 대해서는 노조가 해야 할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은행연합회 등 5개 금융협회는 공동으로 ‘고객응대직원 보호 포스터’를 제작해 금융회사 영업점과 홈페이지 등에 게시하는 등 금융노조의 노력에 부응하기도 했다. 다만 최근 금융노조가 은행원의 과당경쟁을 근절하자며 내부 성과평가지표(KPI) 개편을 요구한 것은 과하다는 지적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노조가 지나치게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관치에 이어 ‘노치’가 될 수 있다”며 “관치처럼 노치도 금융산업의 낙후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CEO 선임은 회사 규정에 따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결정할 문제”라며 “노조가 근로조건을 넘어서 경영권까지 휘두르는 주장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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