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 리포트] 판결 한달 후 공시?…불공정거래 우려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17.09.11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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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판결·결정 이후 공시일까지 시차…정보격차로 주식 불공정거래 가능성

[the L 리포트] 판결 한달 후 공시?…불공정거래 우려


상장사에 대한 중요한 소송 결과가 나온 뒤 경우에 따라 길게는 한달 이상 공시가 이뤄지지 않아 공시제도의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따라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주식 불공정거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0일 금융감독원, 법조계 등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 동양네트웍스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가진 회생채권 규모와 관련한 소송의 1심에서 패소한 사실을 선고일인 지난 6월29일에서 12일이 지난 7월11일이 돼서야 공시했다. 발포제 등 화학 제품을 주로 만드는 금양도 350억원에 달하는 대여금 분쟁의 파기환송심에서 2016년 10월27일 패소했으나 일주일 가량 지난 그 해 11월3일에야 이를 공시했다.



공시(Disclosure)란 기업이 투자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각종 정보들을 투자자들에게 제때 알리도록 하는 장치다. 신속성·정확성은 불특정 다수 투자자 사이의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공시 제도의 핵심가치다.

소송의 진행과 종결에 대한 사항도 주요 공시사항 가운데 하나다. 소송의 결과에 따라 기업은 보상금이나 손해배상충당부채 등 각종 손실요인을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하는데, 이는 주가 하락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한국거래소의 코스피·코스닥시장 공시규정은 자기자본의 5% 이상(자산총액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의 경우 2.5%, 2000억원 이상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 3%) 규모의 재산분쟁이 발생할 때부터 종결할 때까지의 사항을 '확인'한 때에 상장사로 하여금 관련 사항을 즉시 공시토록 하고 있다. 이 '확인시점'은 기업이 소송의 발생·종결과 관련한 사항을 송달받은 때를 의미한다.

문제는 이 확인시점과 실제 분쟁이 일단락되는 법원의 선고·결정시점이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 판결이 내려진 날짜와 해당 정보가 공시된 날짜 사이의 간격이 멀수록 투자자간 정보격차가 커질 가능성이 높고 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가 발생할 가능성도 커진다. 선고일 당일 법정에서 정보를 취득한 투자자와 최장 한 달 후에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이나 한국거래소 상장공시시스템에서 관련 정보를 얻는 투자자는 투자결정 시점에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재판의 선고는 법정에서 판사의 사건번호 확인과 주문낭독 등의 절차에 따라 내려진다. 판사가 해당 판결문을 법원 시스템에 등록하면 해당 서류는 등기우편을 통해 소송 당사자에게 전달된다. 일방 당사자가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진행했을 때는 변호사가 해당 서류를 대신 수령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도 당사자 본인이 서류를 수령한 것으로 간주된다.


문제는 이같은 절차가 항상 깔끔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선고일 당일 법정에 출석하더라도 주문을 낭독하는 판사의 목소리가 작거나 발음이 불분명하다는 등 이유로 당사자들이 판결내용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곤 한다. 해당 주문이 나온 배경을 정확히 알려면 결국은 판결문을 수령해야 하기 때문에 소송 당사자 본인이든 변호사든 판결문이 송달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사태의 책임은 1차적으로 법원에 있다는 지적이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소송관련 공시는 즉시 공시 사항이어서 기업으로서도 부담이 크다"며 "소송 기록이 언제 누구로부터 발송돼 어떤 과정으로 도착했는지 근거기록을 첨부해 '서류 수령 즉시 공시했다'는 점을 증명하지 않으면 거래소로부터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다"며 "되레 기업 입장에서는 법원에서 언제 관련 서류가 올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에 노출돼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과거에는 격무에 지친 판사들이 사건등록을 지연시켜 한 달 이상 지난 후 시점에서야 법원 시스템에 판결문이 등록되는 일도 허다했다"며 "최근에는 3일 이상 지난 사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등록을 못하도록 하고 늦게 사건을 등록하려 할 때 사유서를 제출토록 해 조기등록을 강제하는 쪽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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