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7.8점, 서태지의 데뷔무대 그리고 25년

머니투데이 김명룡 기자 2017.09.0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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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1992년 4월 신인을 발굴하는 한 TV 프로그램에 당시로선 생소한 '랩(Rap)'음악을 들고 3인조 댄스그룹이 나왔다. 음악뿐만 아니라 그들의 춤과 의상도 낯설었다. 무명의 댄스그룹은 후일 가요계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그들의 시작은 가혹했다. 심사위원들은 10점 만점에 7.8점이라는 최악의 점수를 줬다. 이전 참가자들이 9점 이상의 후한 점수를 받은 것과 비교하면 이들에 대한 평가는 유독 호의적이지 않았다.



한 작곡가는 "리듬감이 좋지만 멜로디 라인이 약한 것 같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을 당혹하게 한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 음악의 '새로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기성세대에겐 낯설었을 그 새로움에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열광했다.

훗날 문화대통령으로 등극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무대는 어쩌면 기성세대의 혹평 덕분에(?) 더 극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고루한 심사기준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평가했을 때 생기는 오류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서태지는 3만5000명의 팬이 모인 가운데 데뷔 25주년 기념 콘서트를 여는 등 건재함을 과시했다. 우리 음악사를 뒤흔든 그룹의 탄생을 알아채지 못한 것만으로도 심사위원들은 자격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심사위원은 문화뿐 아니라 경제분야에도 존재한다. 돈이 오가는 자본시장에서는 평가자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기업의 상장 여부나 가치를 평가하는 경우는 특히 더 그렇다.

숨 가쁘게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산업들이 융합을 하고 있다. 이른바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어떤 기술이, 또 어떤 형태의 기업이 나올 지 예측하기 조차 어렵다. 리처드 돕스는 그의 저서 '미래의 속도'에서 "기술 혁신의 속도는 산업혁명보다 10배 더 빠르고, 300배 더 크고, 3000배 더 강하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결국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해서는 평가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쉼 없이 뛰어야 한다. 거래소가 적자기업도 비즈니스모델을 갖추고 있다면 기술성평가 없이도 상장을 가능케 한 이른바 '테슬라상장'을 도입했지만 아직 상장 1호 기업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마땅한 기업이 없든지 제도나 심사기준이 맞지 않든지, 성장성만을 갖춘 기업이 국내에서 상장하기는 여전히 어렵다는 의미다.

기업들은 여전히 상장 문턱이 높다고 불평하지만 당국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더 이상의 규제 완화는 어렵다고 맞서고 있다. 기술보다는 실적을 기반으로 한 기존 상장제도에서는 새로운 기업들이 상장하기 쉽지 않다. 제도가 산업의 발달 속도를 앞지르기는 어렵지만 좀 더 파격적이고 전향적인 태도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7점을 준 작곡가는 지금도 악플에 시달린다고 한다. 잘못된 심사는 악플로 끝나지만 잘못된 상장제도나 심사의 대가는 훨씬 더 가혹할 것이다. 상장과 관련해 거래소나 금융당국이 이를 악물고 산업의 변화속도를 따라가야 하는 이유다.
[우보세]7.8점, 서태지의 데뷔무대 그리고 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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