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시작은 가혹했다. 심사위원들은 10점 만점에 7.8점이라는 최악의 점수를 줬다. 이전 참가자들이 9점 이상의 후한 점수를 받은 것과 비교하면 이들에 대한 평가는 유독 호의적이지 않았다.
훗날 문화대통령으로 등극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무대는 어쩌면 기성세대의 혹평 덕분에(?) 더 극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고루한 심사기준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평가했을 때 생기는 오류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은 문화뿐 아니라 경제분야에도 존재한다. 돈이 오가는 자본시장에서는 평가자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기업의 상장 여부나 가치를 평가하는 경우는 특히 더 그렇다.
숨 가쁘게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산업들이 융합을 하고 있다. 이른바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어떤 기술이, 또 어떤 형태의 기업이 나올 지 예측하기 조차 어렵다. 리처드 돕스는 그의 저서 '미래의 속도'에서 "기술 혁신의 속도는 산업혁명보다 10배 더 빠르고, 300배 더 크고, 3000배 더 강하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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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해서는 평가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쉼 없이 뛰어야 한다. 거래소가 적자기업도 비즈니스모델을 갖추고 있다면 기술성평가 없이도 상장을 가능케 한 이른바 '테슬라상장'을 도입했지만 아직 상장 1호 기업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마땅한 기업이 없든지 제도나 심사기준이 맞지 않든지, 성장성만을 갖춘 기업이 국내에서 상장하기는 여전히 어렵다는 의미다.
기업들은 여전히 상장 문턱이 높다고 불평하지만 당국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더 이상의 규제 완화는 어렵다고 맞서고 있다. 기술보다는 실적을 기반으로 한 기존 상장제도에서는 새로운 기업들이 상장하기 쉽지 않다. 제도가 산업의 발달 속도를 앞지르기는 어렵지만 좀 더 파격적이고 전향적인 태도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7점을 준 작곡가는 지금도 악플에 시달린다고 한다. 잘못된 심사는 악플로 끝나지만 잘못된 상장제도나 심사의 대가는 훨씬 더 가혹할 것이다. 상장과 관련해 거래소나 금융당국이 이를 악물고 산업의 변화속도를 따라가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