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층의 기억 저편에 남아 있는 계란장수의 외침은 애초부터 거짓말이었을 것 같다. 주택가 골목을 누비며 확성기로 "계란이 왔어요. 값싸고 싱싱한 계란이 왔어요~"라고 외쳤던 그 말 말이다.
마트와 슈퍼, 편의점이 활성화하면서 계란장수는 사라졌지만 살충제 계란 파동이 터지기 전까지 장수의 그 말은 오랜 기간 소비자들에게 계란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줬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파동에 대한 국민들의 배신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포비아'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 축산농가 등에 대한 분노는 계란 소비 급감으로 이어졌고 계란 산지가격은 사태 후 1주일 만에 25% 급락했다. '친환경' 타이틀이 붙은 상당수의 계란도 '살충제 계란'으로 드러나면서 계란 소비는 한동안 더 줄 것으로 보여 급락세는 지속될 듯하다.
'살충제 계란' 파동에서 A4용지보다 작은 케이지와 공장식 밀집사육은 우리에게 충격을 줬지만 이 케이지가 역설적으로 밥상물가 급등을 막는데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계란은 소비자물가지수를 구성하는 460개 품목 중 가중치 기준 90위권을 차지할 만큼 국민 생활과 밀접하다. 소비자물가지수를 산정할 때도 계란값 급등은 물가에 즉각 반영된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계란을 공급할 수 있는 공장식 밀집사육은 자연스럽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이었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 자유무역협정(FTA)에 대응해 대폭 늘어났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 사태를 촉발한 원인을 박근혜정부 내지 과거 보수정권 10년간의 잘못된 정책 탓으로만 돌릴 순 없다. 시계추를 더 돌려보면 참여정부 역시 소비자 안전에선 구호만 요란했다. 2005년 당시 재정경제부가 식품·의약품 등 소비자안전지수를 개발하겠다고 발표만 하고 흐지부지 된 게 대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살충제 계란' 파동에 대해 사과하고, 불협화음을 일으킨 농림축산식품부와 식약처가 함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이게 제대로 될지,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살충제 계란에 이어 생리대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식품과 의약외품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정부가 말뿐이 아니라 소비자 안전을 위해 모든 것을 뜯어 고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불신이 조금이라도 해소될 것이다. 이슈가 터질 때만 땜질식 처방을 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때다. 과거 흐지부지된 소비자안전지수를 다시 정비해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방안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소비자안전지수의 범위가 광범위해 마련하는데 시일이 걸린다면 먹거리안전지수라도 먼저 만들어야 한다. 주기적으로 지수를 산정해야만 먹거리 안전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땜질식 처방으로 이슈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기를 반복할 것이고, 안전은 또 다시 뒷전으로 밀려날 게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