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경찰은 영원한 경찰'…퇴직 뒤에도 이웃돕는 경비원 박태준

뉴스1 제공 2017.08.2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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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위해 철야근무 후 춘천으로 가 약 전달해줘
"사회에 그늘이 없어지고 모두 웃으며 살면 좋겠어요"

(서울=뉴스1) 한재준 기자 =
국립재활원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박태준씨(50). © News1국립재활원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박태준씨(50). © News1


지난 6월30일 밤 10시, 서울 강북구 국립재활원으로 걱정 섞인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처방 받은 두달 분의 약을 화장실에 두고 왔다는 환자 김모씨(34·여)의 전화였다.

2012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김씨는 주기적으로 재활원에서 검사를 받고 약을 복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장 그날 먹을 약도 없었다. 춘천에 거주하고 있어 재활원에 갈 수도 없던 김씨는 당황스런 마음에 늦은 시간임에도 재활원으로 전화를 건 것이었다.



"당장 먹을 약이 없다. 죄송하지만 편의점 택배로라도 부쳐줄 수 있겠느냐"는 김씨의 간곡한 부탁에 경비원은 "근무가 끝나는대로 부쳐줄테니 걱정하지말라"고 답했다. 하지만 김씨는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전화를 건 날은 금요일이었고 경비원이 택배를 보낸다고 해도 언제 도착할 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맙소사!"



다음날 아침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은 김씨는 귀를 의심했다. 약을 택배로 부쳐주겠다던 경비원이 철야근무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2시간 가까이 차를 몰고 춘천까지 약을 전달해주려고 찾아온 것이다.

김씨는 고마운 마음에 "식사라도 하시라"며 돈을 건넸지만 경비원은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돌아갔다. 경비원의 선행은 김씨의 제보로 뒤늦게 알려졌다.

이름도 밝히지 않고 환자를 도운 이는 국립재활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경비원 박태준씨(50). 그는 10년 넘게 동네의 치안을 담당해온 경찰이었다. 평소 꿈꾸던 일을 하기 위해 일찍 퇴직한 그였지만 사업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사업을 접고 4년 전부터 국립재활원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냥 환자가 걱정돼서 간거죠. 제 차가 경차라서 연비도 좋습니다."

박씨는 자신의 행동이 "칭찬 받을 일은 아닌 것 같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피곤해서 세수도 못했지만 환자분이 안타까워 근무교대 후 바로 출발했다"고 당시를 말했다.

그는 "재활원에서 근무하다보면 몸이 불편한 분들을 많이 보게 된다"며 "저도 머리가 아플 때, 이가 아플 때가 있는데 토요일은 약국도 닫는 곳이 많으니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보람이라기보다는 내 일이니까 한 것뿐"이라며 "선행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자신을 낮췄다.

나눔의집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박태준씨. © News1나눔의집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박태준씨. © News1
박씨의 선행은 다른 곳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한때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나눔의집에 찾아가 주기적으로 봉사활동도 했다. 레크리에이션강사 자격증이 있는 박씨는 할머니들 앞에서 막내 아들 같은 재롱둥이였다.

"제가 지구대에서 경찰로 근무할 때 만삭의 임산부를 병원에 옮겨다드린 적이 있어요. 다행히 그분이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셔서 동료들과 함께 재래시장에서 미역을 사다드린 적도 있죠. 그게 벌써 20년 전이네요."

박씨는 임산부에게 미역을 전달한 일이 경찰근무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가슴아픈 사건 현장을 다니며 사회가 삭막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는 그는 그 일로 입가에 미소를 띌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등산을 좋아한다는 박씨는 50세의 나이에도 건장한 체격이었다. 그는 블로그에 올린 등반 후기를 보여주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자랑하기도 했다.

"이 사회에 어둠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불편하신 분들 아프지 않고 항상 모든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박씨는 인터뷰 도중에도 재활원 로비 의자에 올라가있는 아이가 넘어질까봐 아이를 안아 올려 의자에 앉히기도 했다. 역마살이 끼었는지 돌아다니는걸 좋아한다던 박씨였지만 그의 선행만큼은 항상 제자리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지켜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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