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재활원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박태준씨(50). © News1
2012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김씨는 주기적으로 재활원에서 검사를 받고 약을 복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장 그날 먹을 약도 없었다. 춘천에 거주하고 있어 재활원에 갈 수도 없던 김씨는 당황스런 마음에 늦은 시간임에도 재활원으로 전화를 건 것이었다.
"맙소사!"
김씨는 고마운 마음에 "식사라도 하시라"며 돈을 건넸지만 경비원은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돌아갔다. 경비원의 선행은 김씨의 제보로 뒤늦게 알려졌다.
이름도 밝히지 않고 환자를 도운 이는 국립재활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경비원 박태준씨(50). 그는 10년 넘게 동네의 치안을 담당해온 경찰이었다. 평소 꿈꾸던 일을 하기 위해 일찍 퇴직한 그였지만 사업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사업을 접고 4년 전부터 국립재활원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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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냥 환자가 걱정돼서 간거죠. 제 차가 경차라서 연비도 좋습니다."
박씨는 자신의 행동이 "칭찬 받을 일은 아닌 것 같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피곤해서 세수도 못했지만 환자분이 안타까워 근무교대 후 바로 출발했다"고 당시를 말했다.
그는 "재활원에서 근무하다보면 몸이 불편한 분들을 많이 보게 된다"며 "저도 머리가 아플 때, 이가 아플 때가 있는데 토요일은 약국도 닫는 곳이 많으니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보람이라기보다는 내 일이니까 한 것뿐"이라며 "선행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자신을 낮췄다.
나눔의집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박태준씨. © News1
"제가 지구대에서 경찰로 근무할 때 만삭의 임산부를 병원에 옮겨다드린 적이 있어요. 다행히 그분이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셔서 동료들과 함께 재래시장에서 미역을 사다드린 적도 있죠. 그게 벌써 20년 전이네요."
박씨는 임산부에게 미역을 전달한 일이 경찰근무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가슴아픈 사건 현장을 다니며 사회가 삭막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는 그는 그 일로 입가에 미소를 띌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등산을 좋아한다는 박씨는 50세의 나이에도 건장한 체격이었다. 그는 블로그에 올린 등반 후기를 보여주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자랑하기도 했다.
"이 사회에 어둠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불편하신 분들 아프지 않고 항상 모든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박씨는 인터뷰 도중에도 재활원 로비 의자에 올라가있는 아이가 넘어질까봐 아이를 안아 올려 의자에 앉히기도 했다. 역마살이 끼었는지 돌아다니는걸 좋아한다던 박씨였지만 그의 선행만큼은 항상 제자리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지켜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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