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에 12년 구형…법원에 퍼진 외마디 탄식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김종훈 기자 2017.08.0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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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단, 최종의견서 특검 주장 '삼인성호'로 요약…이 부회장 "사익 위해 대통령에 기대한 적 결코 없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혐의 관련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혐의 관련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아!"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박영수 특별검사가 12년형을 구형하자 서울중앙지법 311호 중법정 방청석에서는 외마디 탄식이 흘러나왔다.



순간 이 부회장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정면을 응시하다 잠시 시선을 위로 향했다. 자세를 고쳐 앉은 그의 얼굴은 짐짓 아무런 척하지 않으려는 듯해 보였지만 굳어 있었다.

이 부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등도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중압감이 흐른 것은 방청석을 오랜만에 찾은 삼성 미래전략실의 전직 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재판을 주로 챙겼던 성열우 전 삼성 미래전략실 법무팀장(사장)뿐 아니라 김종중 전 삼성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 정현호 전 삼성 미래전략실 인사팀장(사장) 등이 자리해 구형 현장을 지켰다.

이날 '세기의 재판'이라 불리며 지난 5개월간의 공방의 대장정을 사실상 마무리짓는 결심공판이 진행돼 재판 시작부터 평소와는 다른 결연하고도 무거운 공기가 느껴졌다.

재판에 쏠린 관심이 컸던 만큼 시민들은 24시간 넘게 밤샘 대기 한 뒤에서야 방청권을 힘겹게 얻을 수 있었다. 이날은 유난히 더 많은 10여명의 방호원들이 법정 안을 둘러쌌다. 밖은 30도가 웃도는 뜨거운 날씨였지만 법정 안 공기는 이날따라 서늘하게 가라앉은 듯했다.


오후 1시47분부터 최 전 부회장, 장 전 사장, 황 전 전무, 박 전 사장 등이 차례로 들어와 착석했고 평소와는 달리 변호인들과 가벼운 환담은 나누지 않는 분위기였다.

재판 시작 약 3분 전인 1시57분쯤 박 특검과 그동안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을 주로 담당했던 양재식 특검보, 박주성 검사, 조상원 검사, 김영철 검사, 문지석 검사 등이 차례로 들어왔다.

창과 방패의 마지막 대결이라 할 수 있는 최종의견이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박 특검이 먼저 약 15분간 "전형적인 정경유착으로 엄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송우철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한 시간 동안 "특검이 경영권 승계라는 프레임을 만들어냈지만 앞으로도 승계작업의 증거는 제출될 수 없을 것"이라며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송 변호사는 그러면서 특검 측 주장을 '거짓말도 여러 번 되풀이하면 참인 것처럼 여겨진다'는 뜻의 '삼인성호'에 빗댔다. 세 사람이 모이면 호랑이를 만든다는 뜻이다.

송 변호사는 박 특검이 할애한 시간의 약 4배에 달하는 한 시간 동안 최종의견을 진술했다. 중간중간 재판부와 특검 측, 방청석에 두루 시선을 던졌고 목이 마르는 듯 물을 서너 차례 들이켰다.

김진동 부장판사는 양측의 의견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발언자를 응시하거나 입술을 매만지면서 주의 깊게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양측의 물러설 곳 없는 치열한 논리싸움 뒤에는 피고인들의 뜨거운 감정이 전달되는 최후 진술이 마지막 20분을 채웠다.

이 부회장은 이날 "제가 너무 부족한 점이 많았고 모두가 제 탓이었다는 점"이라면서도 억울한 점에 대해서는 결백을 호소했다. 특히 "창업자이신 선대 회장님..."이라고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말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 채 울먹였다.

이 부회장의 참지 못한 울먹임이 고스란히 법정에 전해지자 방청석에서도 하나 둘 흐느끼는 시민들이 늘었다. 한 방청객은 눈물을 흘리며 염주목걸이의 알을 굴려가며 소리 내지 않고 기도했다.

이 부회장은 "제가 사익을 위해서나 개인을 위해 대통령에게 뭘 부탁한다거나 기대를 한 적이 결코 없다"며 "삼성물산 합병으로 국민연금에 엄청난 손해를 입히고 개인이 막대한 이익을 취한 게 아닌가 의심하지만 이는 너무나 심한 오해이고, 오해가 풀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삼성을 대표하는 경영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힘줘 말했다.

오랜 시간 이 부회장의 '멘토' 역할을 했던 최 전 부회장은 뒤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과 얼굴을 훔치기도 했다.

최 전 부회장은 자신의 최후진술을 이어갈 때는 오히려 담담했다.

최 전 부회장은 "만약 삼성에 책임을 물으신다면 이제 늙어서 판단력이 흐려진 저에게 물어주시길 마지막 진술기회를 빌어 간청 드린다"며 "다른 피고인들은 저의 판단을 믿고 따랐단 점을 이해해달라"고 호소했다.

최 전 부회장은 40년간 삼성맨으로 살아오며 일군 업적을 돌이켜 보는 한편 특검 측에서 강요받은 내용도 거침없이 진술했다.

그는 "후진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겠냐는 선진국 경쟁사들의 비아냥 속에서 오늘날 삼성이 반도체 1위로 서는 데 일조했다"며 "TV 사업에서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소니를 꺾고 1등, 핸드폰에서도 노키아를 꺾고 세계 1등을 이뤘다"고 강조했다.

최 전 부회장은 또 "(특검 측이 소환 조사에서)우리 목표는 이재용"이라며 "쓸데없는 총대매기로 총수를 살리려 하지 말라는 진술을 요구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장 전 사장과 박 전 사장, 황 전 전무 등의 1~2분 남짓의 짧은 진술을 마쳤다. 결심 공판을 마친 뒤 이 부회장은 재판부에 인사한 뒤 특검 측으로 가 박 특검과 인사를 나눴다. 그 외 다른 피고인들도 변호인은 물론 자신들을 조사하고 기소, 구형한 특검 측과 담담하게 악수를 나누며 마지막 '세기의 재판'을 마무리했다.

이날 박 특검은 최 전 부회장, 장 전 사장, 박 전 사장에 대해서는 10년, 황 전 전무에 대해서는 7년형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오는 25일 오후 2시30분에 1심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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