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땡볕에 복면女들 "남자, 여자 그만 죽여라"

머니투데이 이동우 기자 2017.08.0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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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마스크로 얼굴 가린 100여명 '여성혐오 반대' 시위…"남녀갈등 조장" 시각도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공론화시위 /사진=뉴스1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공론화시위 /사진=뉴스1


"더 이상의 여성혐오 범죄는 그만, 우리는 살고 싶다."

6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서는 여성혐오 중단을 요구하는 100여명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곳은 지난해 발생한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당시 추모시위가 열렸던 장소다.

인터넷 카페 '여성혐오 살인 공론화 시위'를 중심으로 뭉친 이들은 눈과 코를 가릴 수 있는 가면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주최 측으로부터 여성이라는 인증을 받은 뒤에만 시위에 참여할 수 있었다.



주최 측은 "여성 혐오와 신변에 대한 위협 때문에 얼굴을 가리고 거리에 나섰다"고 밝혔다. 비가 올 수 있다는 일기예보에 따라 시위 현장에는 천막도 설치됐다. 천막 주변에는 '강력범죄 피해자의 88.9%는 여성', 'Men, Stop killing women'(남자들은 여성 죽이기를 멈춰라) 등의 피켓이 설치됐다.

이날 정오부터 시작된 시위는 자유발언 없이 단체 구호를 반복해 외치는 식으로 진행됐다. '개똥벌레' 같은 대중가요나 '세일러문', '둘리' 등의 동요 가사를 개사해 따라부르기도 했다.



이들은 "남자들은 편히 살 때, 여자들은 벌벌 떤다"며 "여성혐오 국가에서는 여성들이 죽어난다"고 주장했다. 여성들이 쉽게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각종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퍼지는 여성혐오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이들은 여성을 대상으로 외모를 품평하고 비하하는 식의 사진, 동영상 등이 모두 여성혐오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시위 참가자들은 "남자들이 재미로 만든 여혐 콘텐츠에 누군가는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20대로 보이는 남성들이 시위 모습을 영상과 사진으로 담으려다 주최 측 여성들에게 제지당했지만, 그 이상의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시위 현장을 지켜본 시민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남성 직장인 손모씨(28)는 "여성혐오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좋다고 본다"면서도 "이런 편 가르기 시위는 남성과 여성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학생 정지원씨(26·여)는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대부분 여성인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라도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피해자를 부각하지 않고 여성혐오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도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시위 준비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왁싱숍 살인사건' 관련 얘기는 현장에서 나오지 않았다. 원래 주최 측은 지난 5일 서울 역삼동 왁싱숍에서 살해당한 여성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시위를 준비했지만, 자신을 유족과 피해자의 지인이라고 밝힌 이들이 해당 카페에 공론화 자제 취지의 글을 올리며 논란이 일었다.

이날 시위를 앞두고 "유가족의 반대에도 시위가 정치적 색깔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과 "피해 유가족의 아픔을 들추려는 게 아니라 여성혐오 자체를 말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반론이 맞섰다. 결국 주최 측은 ‘왁싱숍 살인사건’에 대한 언급을 빼고 이날 시위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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