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500년 역사의 외암 민속마을

머니투데이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2017.08.0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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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외암리 민속마을에 가면

편집자주 여행은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수단이다. 여행자들이 전하는 세상 곳곳의 이야기는 흥미와 대리만족을 함께 안겨준다. 이호준 작가가 전하는 여행의 뒷얘기와 깨달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외암리 민속 마을의 초가집들.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외암리 민속 마을의 초가집들.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바다로 갈까? 강으로 갈까? 아니면 산으로? 휴가철이 되면 한 번쯤 해보는 고민이다. 문제는 어디를 가도 사람에 치여 휴식 대신 고역을 치르다 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 나는 가능하면 조용한 곳을 찾아보라고 권한다. 한여름에도 조용한 곳이 있을까? 물론 찾아보면 있다.

충남 아산의 외암리 민속 마을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더욱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고택 체험도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땅에 우리 고유의 풍경을 간직한 마을이 여럿 있지만, 가장 소박하면서도 정다운 느낌을 주는 곳이 외암리 민속 마을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더욱 옛 정취가 웅숭깊게 다가선다. 마을에 들어서면 먼저 돌담이 앞장서서 구불구불 걸음을 이끈다. 솟을대문 우뚝한 기와집과 조개껍데기처럼 낮게 엎드린 초가집이 번갈아 반긴다. 이곳에서는 그 무엇도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껴안고 보듬어 조화를 직조한다.



외암마을은 약 500년 전부터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마을의 주인은 평택진씨였다. 하지만 현재 외암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의 절반은 예안이씨다. 맨 처음 이 마을에 살기 시작한 예안이씨는 평택진씨 참봉 진한평의 사위인 이사종이었다. 그가 진한평의 큰딸과 혼인해 들어와 살면서부터 예안이씨의 씨족 마을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마을에는 다양한 형태의 한옥과 초가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조선 시대에 참판을 지낸 이정렬이 고종에게 하사받아 지은 아산 외암리 참판댁은 중요민속자료 제195호로 지정돼 있다.

외암리 민속 마을에 가면 나는 솔밭 언덕 쪽으로 먼저 올라간다. 내를 따라 우회하거나 마을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길도 있지만, 내 경험으로는 왼쪽에서부터 걷는 게 가장 좋다. 초입의 초가집 몇 채를 지나면 솟을대문이 우뚝한 기와집과 만나게 된다. 안내판에 감찰댁이라고 써놓았다. 담이 높지 않아 집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안채 동쪽에 대나무 숲이 있고 그 앞으로 정원과 정자가 있다. 조선 시대 상류 주택의 전형적인 구조다.



외암리 민속 마을 안쪽으로 이어진 돌담길.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외암리 민속 마을 안쪽으로 이어진 돌담길.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고샅길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집들보다 돌담에 시선을 먼저 빼앗기기 마련이다. 외암마을을 빛나게 하는 건 누가 뭐래도 돌담이다. 마치 마을 전체가 돌담으로 된 미로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다. 담장 길이를 모두 합치면 5.3㎞나 된다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곳의 담은 배척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서로가 불편하지 않을 만큼 그어놓은 최소한의 경계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외암(巍巖) 이간이 출생했다는 건재고택을 보고 난 뒤 다시 돌담을 따라 걷는다. 골목 끝에서 불현듯 뒤를 돌아본다. 아! 내가 지나온 길에, 지금까지 본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 그렇게 가끔 돌아보며 걸을 일이다. 교수댁에 들른다. 건재고택‧송화댁과 함께 아름다운 정원을 자랑하는 집이다. 마당에 수로를 만드는 등 정교하게 조성한 흔적이 역력하다.

송화댁은 사람의 집이라기보다는 소나무의 집 같다. 사람 사는 공간을 최소화하고 정원 공간을 최대한 많이 확보했다. 옛사람들의 여유로운 마음을 들여다본다. 소나무들도 그런 마음을 아는지 꼿꼿함보다는 자유분방함을 택했다. 구부러지고 휘어지고 저희끼리 얽히고…. 파격은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는 미덕이 있다. 외암종가댁의 아담한 꽃밭과 사랑채 마루가 쉬어 가라고 손짓한다. 이런 땐 모른 체 그냥 지나가면 결례다. 가끔 나무 그늘에서 땀도 식히고 마루에 앉아 매미 소리도 들어볼 일이다.


외암사당을 거쳐 마을 외곽 길을 걸어본다. 너른 길옆으로 내가 졸졸졸 소리 내며 흐른다. 다시 고종황제가 하사했다는 참판댁과 풍덕댁 등을 들르며 걷다 보면 마을 입구에 닿는다. 마을을 빠져나가기 전에 중간에 느티나무가 서 있는 곳으로 가면 600살이 넘은 당산목을 만날 수 있다. 지금도 매년 음력 1월 14일이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목신제를 지낸다. 느티나무와 인사를 나눴으면 마을을 다 돌아본 셈이다.

발걸음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잔뜩 매달려 있다. 마을을 벗어나는 다리를 건너기 전 지나온 길을 슬며시 돌아본다. 몸은 동구 밖에 있지만 마음은 마을 안에서 서성거린다. 그리움 한 자락 맡겨두고 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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