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북핵, 미국 선택과 러시아 역할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2017.08.03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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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북핵, 미국 선택과 러시아 역할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신사적’이라는 것이 많을 것이다. 법치와 정의, 인권을 워낙 강조하는 데다 넉넉하게 사는 사람들이라 개개인은 대부분 낙천적이고 친절하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이라는 나라는 힘의 축적과 무력 사용을 기반으로 발전한 거친 나라다.

미국인의 원조인 색슨인과 앵글인은 성실하기는 했으나 성격이 포악했다. 특히 적에게는 매우 잔인했다. 이 때문에 난폭한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영국에서 예의범절이 발달했다고 한다. 처음 신대륙에 건너간 사람들도 강인했기 때문에 절반이 사망하는 와중에도 살아남았고 서부개척 시대에 천신만고 끝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사람들은 나름 다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이어서 거칠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들을 상대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는데 자경단이 필수였고 각자 호신을 위해 무장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는 종종 대형 총기사고가 나지만 총기규제가 제자리걸음인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위험한 나라고 미국인들은 아직도 험한 사회에서 산다. 민간인이 약 3억정의 총기를 소유하고 40% 정도의 가정에 최소 1정의 총기가 비치돼 있다. 미국 경찰이 우리가 보기에 지나치게 거친 이유다. 자정이 넘어도 남녀노소로 붐비는 평화로운 서울거리 모습은 미국인들에게는 요즘 말로 실화가 아니다.

미국은 항상 전쟁 중인 나라이기도 하다. 20세기 이후에도 1·2차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1·2차 이라크전쟁, 테러와 전쟁을 했다. 동네에서 누군가는 전장에 나가 있고 종종 전몰 소식이 들려온다. 물론 미국은 연 600조원 규모의 국방예산이 창출하는 무력을 절제해서 사용한다(중국은 200조원, 러시아는 70조원이다). 1차 이라크전쟁 때 미군의 공습에는 반드시 국무부 변호사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문화재를 손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체니 당시 국방장관은 변호사들이 전쟁을 지휘하는 꼴이라고 분개했다.



그러나 미국은 직접 무력 위협을 받게 되면 단호해지는 나라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에 그랬고 쿠바의 미사일 위협에 그랬다. 미국인들은 현대에 들어와서는 9·11을 제외하고 자기가 사는 마을이 전쟁으로 쑥대밭이 되고 주위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세계사에서 흔해 빠진 그 경험을 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북한의 본토 핵 위협에 대해 미국의 여론이 무력 사용으로 돌아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강경파가 득세하고 한반도는 파국을 맞을 수 있다. 미국에는 전쟁이 늘 있는 일일 수 있어도 우리에게는 재앙이다. 북핵 상황은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최근 러시아가 북핵 문제에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러시아는 북한 편을 들지만 중국만큼 북한에 크게 집착할 이유는 없는 나라다. 유가가 떨어지고 크림반도 문제로 서방의 경제제재가 옥죄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격변은 ‘제2의 표트르대제’를 꿈꾸는 푸틴이 반길 일이 아니다. 러시아는 구한말 이후 처음으로 동아시아 국가가 되려 하고 있다. 무한 잠재력을 지닌 시베리아의 기후가 변하고 있다는 보고도 나온다. 사실 10월 혁명 전 러시아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완충세력 역할을 했다. 1896년 고종이 1년 넘게 피신했던 곳이 러시아 공관이다.

지난달 함부르크에서 한·러 정상은 극동개발 협력과 함께 북핵 불용과 비핵화 협상 재개에 합의했다. 이를 발판으로 러시아에 북핵 문제에 더 큰 역할을 요청해야 한다. 물론 경협이 필수다.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입지가 커지는 것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곤란한 우리에게 별로 나쁠 것이 없다. 미국에도 자제의 명분을 준다. 누군가 중재를 하는 동안에는 전쟁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가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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