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킨파크의 보컬 체스터 베닝턴. /사진=위키미디어
미국 연예매체 TMZ는 베닝턴이 20일(현지시간) LA 카운티 팔로스 버디스 에스테이츠에 있는 자택에서 목을 맸다고 보도하면서 그 배경으로 어린 시절 학대의 기억, 과거 자살에 대한 언급, 최근 몇 년 간 싸워온 약물·알코올 중독 등을 언급했다.
하지만, 2000년 데뷔 음반 ‘하이브리드 씨어리’(Hybrid Theory)를 발표하면서 지금까지 17년간 린킨파크가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그의 죽음은 낯설면서 의외다.
이들은 음반을 내자마자 전 세계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데뷔 음반이 2400만 장을 팔아치운 데 이어, 2집 ‘Meteora’(2003)는 16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H.O.T의 문희준이 린킨파크의 열혈팬임을 자처하는 등 전통 록에서 변화를 꾀하려는 수많은 밴드들이 린킨파크를 롤모델로 삼았다.
베닝턴은 2집 수록곡 ‘Don’t Stay’에서 확연히 드러나듯, 아주 거칠진 않지만 가슴을 흔드는 포효하는 그로울링(growling) 창법으로 “우리 그룹의 뿌리는 록”임을 여실히 증명했다. 심장에 직격탄으로 꽂히는 베닝턴의 창법은 이 그룹이 록과 힙합(랩), DJ 세션, 펑크(funk), 일렉트로니카 등 정체성을 알기 어려운 혼재된 ‘짬뽕’ 이미지에서 21세기 록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그 좌표를 확실히 제시한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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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킨파크는 하이브리드 록이었지만, 어떤 곡이든 팝의 달콤한 향기를 잊지 않았다. 록의 태도에서 사람들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시종 뛰었고, 팝의 선율에선 노래방에서 하듯, '떼창'을 서슴지 않았다.
장르 간 합종연횡을 과감히 시도하면서도 이 그룹이 놓치지 않는 단 하나의 철학이 있었다. 기존 록이 저항을 무기로 섹스나 폭력 등 강한 소재로 어필한 것과 달리, 이들은 ‘건강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이들의 노랫말에서 비속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또래가 겪는 일상의 비극을 희망의 언어로 가꾸는 데 전념했다.
베닝턴은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정직하고 솔직한 노랫말을 쓰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비속적이고 폭력적인 것과 연결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며 “하드코어 그룹이 무조건 비관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인식을 뒤집고 싶다”고 말했다.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 같은 밴드의 건강성을 해치는 일련의 만연된 록 그룹의 이미지에서도 거리 두기를 확실히 했다. 멤버들은 술이나 담배를 원할 경우 공연이 끝나거나 없는 날 하는 것을 규율로 정할 정도였다.
하이브리드 록 그룹 린킨파크 멤버들. 20일(현지시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보컬 체스터 베닝턴(왼쪽).
그래서 더 의문이다. 음악적 태도와 연결지으면 지을수록 낯설고 충격적인 베닝턴의 자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베닝턴은 지난 5월 절친인 그룹 사운드가든의 보컬 크리스 코넬이 자살하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6000만 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린 린킨파크는 그래미 시상식에서 두 차례 수상했다. 2003년 첫 내한공연 때 관객 1만 5000명 앞에서 그들이 소유할 수 있는 모든 열정과 광기를 쏟아내며 관객과 혼연일체가 된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앙코르 공연에서 한국 관객을 무대로 불러 스스럼없이 같이 즐기던 베닝턴의 소년 같던 미소가 금세라도 다시 피어오를 것만 같다.
목청 터지게 따라 불렀던 멋있고 신나는 히트곡을 다시 들으니, 그 음률의 빈 박자에서 애상이, 지금껏 감춰둔 베닝턴의 슬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