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초·원천연구, 연구자 중심 투자 늘려야 하는 이유

머니투데이 이진규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 2017.07.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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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삼성전자 (76,700원 ▲400 +0.52%)의 반도체 부문이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매출에서도 인텔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호실적을 이끈 주력 상품 중의 하나는 3차원 수직 구조 낸드플래시 메모리다. 기존 평면 구조가 보여온 집적도의 한계 극복을 위해 메모리를 수십 층으로 쌓아올려 용량을 획기적으로 늘린 제품이다.

4차 산업혁명에 힘입어 반도체 시장 자체가 대호황기라고는 하지만, 장기간에 걸친 연구개발과 투자가 선행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성과다.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수직으로 적층 하는데 필요한 핵심 원천기술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 정부의 장기적인 기초‧원천연구 투자와 산학연의 우수한 과학기술인들의 협력을 통해 낸드플래시 메모리가 개발됐다. 삼성전자는 이 기술을 이전받아 대규모 투자를 통해 첨단 제품으로 완성, 양산에 성공한 것이다. 이 기술은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
이진규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사진제공=미래부.이진규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사진제공=미래부.


그러나 초기 연구 단계에서 수직 구조 낸드플래시 핵심기술이 이렇게 성공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다. 여러 가지 후보 기술 중 하나였을 뿐이다.

기술과 시장의 변화는 너무나 복잡한 변수들이 얽혀있다. 어떤 기술이 어떻게 발전할지, 우리 경제사회에 얼마나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정확히 예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렇게 불확실하고 먼 미래에나 실현 가능한 기술에 당장 투자하기가 어렵다.



정부가 기초·원천연구에 집중투자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을 대신해서 초기 단계의 연구에 투자함으로써 연구자들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휘하게 하고 이를 통해 미래에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과학적 지식을 축적하며, 제품과 서비스 개발의 위험성과 불확실성을 감소시켜 주는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연구에 참여한 연구자와 학생들은 그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게 된다.

과거 대학과 기업의 연구개발 역량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정부R&D 투자가 개발단계 연구에 집중됐다. 대학의 연구력과 기업의 R&D 투자역량이 크게 향상된 지금은 정부 R&D가 기초원천연구를 중심으로 투자해야 할 당위성과 여건이 충분하다.

문재인 정부의 연구개발정책도 이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정부 R&D의 기초‧원천연구 투자 비중을 높여가는 동시에, 연구자가 창의성과 도전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우선 연구자가 주도하는 자유공모형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를 2017년 현재 약 1조 2,600억원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늘려 2022년에는 2배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이공계 대학 전임교원의 절반 이상이 정부의 연구비 지원을 받으면서 자신이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신진연구자가 연구를 시작할 때 빨리 현장에 정착하여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연구시설과 장비 구축 등을 지원하는 '최초 혁신실험실 구축' 비용도 지원한다. 또 연구자가 단절 없이 연구를 수행하여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생애 기본 연구비'를 도입할 계획이다.

둘째로, 원천기술개발사업에서도 연구자가 주도하는 개방적 기획을 활성화할 것이다. 현재는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기획위원회에서 과제제안서(RFP)를 기획하여 연구자를 공모하는 하향식(Top-down) 위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는 기획 단계에서 다양한 연구자의 아이디어가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연구 목표 등만 개략적으로 제시하고 연구계획서를 공모하는 혼합형(Middle-up) 방식의 과제 기획을 확대해나갈 것이다. 이와 함께 온라인 집단지성 토론기획, 산학연 전문가 워크숍 등을 통해 다수 연구자가 기획에 참여하는 '크라우드형' 기획도 활성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초 원천 분야 지원 체계를 미래부로 일원화하여 연구자 중심의 효율적 정부 R&D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다. 현재 정부 R&D를 수행하는 부처가 34개, 사업을 관리하는 연구관리전문기관이 13개, 각기 다른 R&D 관리규정이 114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복잡한 시스템은 연구자로 하여금 연구 외적인 부분에 많은 시간을 쏟게 한다. 부처 간 칸막이에 의한 유사중복 및 융복합 저해 문제도 수반한다. 특정 산업(기업) 수요 기반의 R&D는 각 부처가 수행하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할 기초·원천연구 지원은 과학기술 총괄부처인 미래부가 통합 수행해야 한다.

1966년 KIST 설립과 1967년 과학기술처 설립으로 시작된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역사가 어느덧 50년을 넘어가고 있다. 디램(DRAM), 고속철, 자동차, 철강 등 수많은 우리 기술이 한강의 기적을 도왔다. 과학기술이 경제발전에 기여 해 온 과거 50년의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의 50년, 100년간 사회경제문화의 풍요를 과학기술이 책임질 수 있도록 정부 R&D 시스템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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