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혜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은 한국 창작 무용의 '대모'로 불린다. 그의 삶은 곧 한국 창작 무용의 역사기도 하다. /사진제공=공연기획MCT
'신 전통춤'은 동선을 새롭게 구성하거나 소품과 의상을 현대적으로 디자인하는 등 전통춤을 재창조한 장르다. 서양에서 들어온 발레나 현대무용을 무분별하게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한국 전통무용 기반으로 하되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다.
그의 삶은 곧 한국 창작 무용의 역사와 결을 같이한다. 배 전 감독이 본격적으로 전통춤을 새롭게 해석, 창작하기 시작한 건 1970년대다. 그는 1977년 작품 '타고 남은 재'로 "전통춤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으며 한국 창작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배정혜 전 감독의 작품 '산조'. 거센 인생의
풍파를 묵묵히 겪어내는 인간 내면의 감정을 나지막한 아쟁산조에 맞춰 감성적 춤사위로 풀어낸다. /사진제공=공연기획MCT
풍파를 묵묵히 겪어내는 인간 내면의 감정을 나지막한 아쟁산조에 맞춰 감성적 춤사위로 풀어낸다. /사진제공=공연기획MCT
그의 창작은 장르와 범위를 가리지 않는다. 국립무용단을 이끌며 만들었던 작품 '솔(soul), 해바라기'에선 재즈 음악과 한국무용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이 작품은 독일에서 8회 전 석 매진을 기록했다. 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무대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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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춘다는 건 삼시 세끼 밥을 먹는 것과 같다. 밥을 안 먹으면 살기 어려운 것처럼 밥먹듯이 연습을 해야 한다"는 배 전 감독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그를 떠나지 않는 고민도 있다. 바로 열악한 한국 무용계 현실이다. 그는 "30년 전 월급이나 지금 단장 월급이나 비슷하다"며 "물가는 수십 배 올랐는데 무용계 현실은 그대로"라고 털어놨다. 그가 이번에 올리는 '신 전통' 공연 역시 별다른 지원금을 받지 못해 사비를 털어야 했다.
"사실 한국무용은 사회에서 호응이 없는 예술이잖아요. 스포츠처럼 확실하게 금메달을 따서 주목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교육 현장에서도 서양 예술보다 전통 예술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이 길을 고수한다는 게 참 힘들죠."
작품 '율곡'에서 배정혜 전 감독은 겨울의 쓸쓸함을 자작나무를 통해 표현한다. /사진제공=공연기획MCT
그의 '신 전통춤'은 한국의 흥취를 담아낸 민속춤, 정제된 복식과 장식을 갖춘 멋스러운 궁중 춤, 크고 작은 북들의 향연으로 재구성한 무속춤 등 크게 세 분야로 나뉜다. 이번 '신 전통Ⅲ'공연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창작 안무도 있다. 신라시대 화랑의 기상을 담아낸 검무 '도'와 전통 가곡의 음률에 맞춰 쓸쓸한 겨울을 노래하는 '율곡'이란 작품이다.
배 전 감독은 "이번 공연은 4번의 공연 프로그램이 매일 다른 게 특징"이라며 "같은 춤도 다른 사람이 추기 때문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쉴틈 없이 또 다음 공연을 준비한다. 이번 가을, 국립무용단과 함께 하는 공연을 위해 벌써 안무 창작에 나섰다. 한국무용계를 든든히 떠받치고 있는 그의 존재가 새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