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창작무용 '대모' 배정혜 "신 전통춤, 세계서도 통할 것"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2017.07.0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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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배정혜의 新전통Ⅲ' 공연…"30년 전과 월급 비슷해…한국 무용의 열악한 현실 안타깝다"

배정혜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은 한국 창작 무용의 '대모'로 불린다. 그의 삶은 곧 한국 창작 무용의 역사기도 하다. /사진제공=공연기획MCT배정혜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은 한국 창작 무용의 '대모'로 불린다. 그의 삶은 곧 한국 창작 무용의 역사기도 하다. /사진제공=공연기획MCT


고희도 어느덧 3년이 넘었건만 여전히 바쁘다. 한국 창작 무용계의 '대모'로 꼽히는 배정혜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73)은 1일부터 4일까지 강동아트센터 소극장 드림에서 자신의 '신(新) 전통춤'을 한데 모아 무대에 올린다. 20여명의 후배들과 함께다.

'신 전통춤'은 동선을 새롭게 구성하거나 소품과 의상을 현대적으로 디자인하는 등 전통춤을 재창조한 장르다. 서양에서 들어온 발레나 현대무용을 무분별하게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한국 전통무용 기반으로 하되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다.



'신 전통춤' 1세대인 배 전 감독은 춤과 함께 살아온 세월만 70년이다. 세 살 때 '신동'으로 불리며 춤을 추기 시작해 5살 때 장추화무용연구소에 최연소로 입문하는 기록을 남겼다. 8살에 무대에 섰고 12살에 개인 발표회를 열었다. 국립국악원 상임안무가, 서울시립무용단장, 국립무용단장과 예술감독을 모두 거치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남겼다.

그의 삶은 곧 한국 창작 무용의 역사와 결을 같이한다. 배 전 감독이 본격적으로 전통춤을 새롭게 해석, 창작하기 시작한 건 1970년대다. 그는 1977년 작품 '타고 남은 재'로 "전통춤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으며 한국 창작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배정혜 전 감독의 작품 '산조'. 거센 인생의<br>
 풍파를 묵묵히 겪어내는 인간 내면의 감정을 나지막한 아쟁산조에 맞춰 감성적 춤사위로 풀어낸다. /사진제공=공연기획MCT<br>
배정혜 전 감독의 작품 '산조'. 거센 인생의
풍파를 묵묵히 겪어내는 인간 내면의 감정을 나지막한 아쟁산조에 맞춰 감성적 춤사위로 풀어낸다. /사진제공=공연기획MCT
배 전 감독은 한국 전통 무용의 가능성을 무한하다고 본다. 응용할수록 재밌고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다는 것. "'전통'이라고 정해져 있는 춤의 종류가 너무 적다 보니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전통을 협소하게만 생각하죠.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얼마든지 광범위해질 수 있어요. 전통춤을 다양하게 활용해 사람들이 전통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어요. '신 전통춤'을 만든 이유죠."

그의 창작은 장르와 범위를 가리지 않는다. 국립무용단을 이끌며 만들었던 작품 '솔(soul), 해바라기'에선 재즈 음악과 한국무용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이 작품은 독일에서 8회 전 석 매진을 기록했다. 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무대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춤을 춘다는 건 삼시 세끼 밥을 먹는 것과 같다. 밥을 안 먹으면 살기 어려운 것처럼 밥먹듯이 연습을 해야 한다"는 배 전 감독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그를 떠나지 않는 고민도 있다. 바로 열악한 한국 무용계 현실이다. 그는 "30년 전 월급이나 지금 단장 월급이나 비슷하다"며 "물가는 수십 배 올랐는데 무용계 현실은 그대로"라고 털어놨다. 그가 이번에 올리는 '신 전통' 공연 역시 별다른 지원금을 받지 못해 사비를 털어야 했다.

"사실 한국무용은 사회에서 호응이 없는 예술이잖아요. 스포츠처럼 확실하게 금메달을 따서 주목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교육 현장에서도 서양 예술보다 전통 예술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이 길을 고수한다는 게 참 힘들죠."



작품 '율곡'에서 배정혜 전 감독은 겨울의 쓸쓸함을 자작나무를 통해 표현한다. /사진제공=공연기획MCT작품 '율곡'에서 배정혜 전 감독은 겨울의 쓸쓸함을 자작나무를 통해 표현한다. /사진제공=공연기획MCT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계속 하게 만드는 동력은 하나, 후대를 길러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의무감이다. "세계에서 한국 무용의 수준을 높이려면 이 전통을 고집 안 할 수가 없어요. 이런 무대라도 열지 않으면 춤이 늘지도 않고 '전통의 멋'을 제대로 익힐 수가 없습니다. 국립무용단 시절 '솔, 해바라기'와 같은 작품으로 세계 무대에 많이 갔듯이 '신 전통춤'도 충분히 세계화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그의 '신 전통춤'은 한국의 흥취를 담아낸 민속춤, 정제된 복식과 장식을 갖춘 멋스러운 궁중 춤, 크고 작은 북들의 향연으로 재구성한 무속춤 등 크게 세 분야로 나뉜다. 이번 '신 전통Ⅲ'공연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창작 안무도 있다. 신라시대 화랑의 기상을 담아낸 검무 '도'와 전통 가곡의 음률에 맞춰 쓸쓸한 겨울을 노래하는 '율곡'이란 작품이다.



배 전 감독은 "이번 공연은 4번의 공연 프로그램이 매일 다른 게 특징"이라며 "같은 춤도 다른 사람이 추기 때문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쉴틈 없이 또 다음 공연을 준비한다. 이번 가을, 국립무용단과 함께 하는 공연을 위해 벌써 안무 창작에 나섰다. 한국무용계를 든든히 떠받치고 있는 그의 존재가 새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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