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스튜어드십 코드와 소프트 파워

머니투데이 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소장 2017.06.23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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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조지프 나이 교수는 21세기를 '소프트 파워' 시대라고 말했다. 삶의 질과 자유가 부각되는 시대에,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명령이나 강제라는 '물리적인 힘(Hard Power)'보다는 가치와 유인의 증대에 기초한 '자발적 동의(Soft Power)'가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제 사회 변화의 근본 동인은 군사와 경제 같은 양적인 '힘'보다는 과학·문화·정직·매력 등 질적인 '신뢰'에 있다.

지난 8일 금융위원회는 스튜어드십 코드 관련 법령해석집을 발표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주식 운용을 담당하는 기관투자자가 그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정책과 활동을 자율적으로 규정하고 실행하도록 하는 '연성규범(Soft Law)'이다.



주주의 가장 기본적 권리인 의결권 행사부터 상시 대화까지, 투자 대상 회사에 대한 관여(Engagement) 수준과 원칙을 기관별로 선포한 후 그 이행 현황을 공시하고(Comply), 준수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이유를 설명하도록(Explain) 하는 것이다.

그러면 스튜어드십 코드의 성공적인 도입과 효과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애매할 땐 기본으로 돌아가듯, 코드의 도입 취지와 연성 규범이라는 성격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현재 한국의 기업지배구조는 주로 상법·공정거래법·자본시장법 등이 규율하며, 위반시 민·형사상 책임을 지는 '경성규범(Hard Law)'의 통제를 받고 있다. 그러나 기업지배구조의 모든 사항을 법으로 규율할 수는 없으므로 '시장 및 참여자 규율형'인 연성규범으로 이를 보완하자는 것이 코드도입 취지다.

이를 통해 '기관의 건설적인 관여 증가→정보 공시 확대(정보 비대칭성 감소)→이사회 효율성 확보(대리인 비용 감소)→의사결정 효율 증대(기업가치 증가)→신뢰 및 투자 매력 향상(Soft Power 확대) 투자 증대에 따른 시가총액 증가(주주가치 증가)'의 선순환을 이루자는 것이다.

선순환 출발점인 기관 관여 유도를 위해서는 인센티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발적 규율이기 때문이다. 다음 과제로는 시장 참여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정보 공시의 확대를 들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시장효율성은 정보투명성과 직결되는데, 이는 자율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상장 규정 등 기업지배구조 관련 공시 법령 정비를 통한 시너지 확대가 병행돼야 하는 이유다.


한국의 다른 법들이 유럽 대륙법 체계의 영향을 받은 것과 달리 자본시장 관련 법은 미국법 체계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미국이 독립 이후 로마의 체제와 이념 '견제와 균형'을 닮고자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 진나라에는 법령이 매우 많았고 형벌 또한 가혹했다. 반면 로마는 외국인과 범죄자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하는 등 강력한 인센티브를 줬다. 그들은 이러한 '자율성과 개방성'을 바탕으로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백성들을 억압해서 6500㎞가 넘는 만리장성을 쌓은 진나라는 15년 만에 멸망했으나, 신뢰를 바탕으로 길을 닦은 로마는 1000년의 번영을 누렸다.
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소장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소장


이것이 바로 소프트 파워라는 시대 정신이다. 자본시장 선진화의 길목에서, 정보는 더 이상 독점하고 감춰야 할 대상이 아니다.

로마의 '소프트 파워'는 강력한 군사력이라는 '하드 파워'를 전제로 균형을 추구했다. 연성규범인 국제법에서도 유엔 안보리의 제재권(UN헌장 7장)이 인정되고 있다. 자본시장은 냉혹한 곳이다. 최소한 그 이행 감독 역할만은 일본처럼 권위있는 금융감독당국이 해야 한다. 어떠한 정책이든 도입보다는 실효성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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