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칼빈슨 호와 현대판 포함외교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2017.06.19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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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칼빈슨 호와 현대판 포함외교


포함외교라는 모순된 말보다 국제정치의 본질을 더 잘 나타내는 말은 없을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함대는 1827년 그리스에서 영국 채권자들의 돈을 받아다 주었고 1840년에는 중국에 영국 상인들의 아편도 팔게 해주었다. 1866년의 셔먼호 사건, 1871년의 신미양요, 1875년의 강화도 사건은 조선의 대외통상 개시와 개국으로 이어졌다.

제국주의 시대가 종식된 이후로 노골적인 포함외교는 사라졌으나 클라우제비츠의 말처럼 아직도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책의 연장에 불과하고 군사력과 그를 뒷받침하는 경제력이 바로 외교력이다. 현대판 포함외교에는 포함이 아닌 칼빈슨호와 같은 항모와 토마호크 미사일이 동원된다. 칼빈슨호의 1년 운용비용은 약 4조원으로 북한의 1년 국방비와 같다. 지난 4월 미국이 시리아에 59기를 발사한 토마호크는 1기에 15억원이다.



국제질서의 핵심은 힘, 즉 강력이다. 주권국가들은 자국의 정책을 국제사회에 적용하거나 타국의 그러한 시도에 대응하는 데 힘을 사용하며 정책의 결정에 자국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의 존재와 크기를 반영한다. 그러나 힘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떤 강대국에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힘으로 형성된 정치적 상황을 법으로 변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여기서 국제법이 만들어진다. 국제법이 국가의 행동에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대국들에 국제법은 가성비가 매우 우수한 외교수단이다.

국제법 위반인 북핵 문제 해결의 한 방법으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동결하면 칼빈슨호 같은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의 축소를 생각해야 한다는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의 발언이 논란이다. 비핵화를 대화의 조건으로 하는 미국의 전통적 입장과 다르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북핵 문제처럼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국제사회의 가용한 모든 역량이 동원되어도 충분치 않다는 것이 이미 충분히 드러났다. 유엔에서의 대북 경제제재도 아직 그 효과가 미지수고 아마도 오랜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란은 미국의 경제제재를 1979년 이후 무려 40년이나 견디고 있다. 한때는 이란 개인여행객들이 이란이 터키에 석유를 수출하고 받은 금을 항공편을 통해 두바이로 운반하고 그 금을 두바이에서 영업 중인 8000개의 이란 기업이 매일 200편 이상의 선편으로 이란에 실어 나르기도 했다. 이렇게 제재 대상과의 관계에 더 비중을 두는 3국이 제재 효과를 감소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대북 경제제재의 실효성에 중국의 태도가 결정적인 것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전략적 자산의 전개를 미리 축소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일지 의문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동결을 미국의 전략자산 축소와 연계한다는 생각은 실종된 외교를 복원하기 위한 고육책일 수는 있지만 트럼프행정부의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미국 공화당은 로마제국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로 거슬러 올라가는 ‘힘을 통한 평화’를 1980년부터 지속적으로 채택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에도 포함되었다. 북핵은 1962년 쿠바위기 이후 처음으로 미국 본토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북핵 인정은 일본의 핵무장이라는 문제도 발생시킨다.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하면 한국은 핵보유국들에 완전히 둘러싸이게 된다. 우리 세대는 우리나라가 ‘4대 열강에 둘러싸인 곳’이라고 학교에서 배우면서 자랐는데 기가 죽은 것이 사실이다. 북한의 끊임없는 전쟁위협을 겪으면서 어린 마음에 왜 하필이면 한국에 태어났나 하는 미욱한 생각들도 했고 ‘그런 말을 들으면 코리아는 슬픕니다’라는 공익광고까지 나왔다. 우리나라는 ‘핵보유국들에 둘러싸인 곳’이라고 배우면서 자라게 된다면 미래 세대는 지금 우리가 국사책을 보면서 느끼는 실망과 답답함을 넘어 선대에 분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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