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선’ 봉준호식 스타일 빠진 밋밋한 ‘계몽’ 메시지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7.06.1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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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무비] 29일 개봉하는 ‘옥자’…멀티플렉스 3사 “온라인과 극장 동시 개봉 반대”

‘날선’ 봉준호식 스타일 빠진 밋밋한 ‘계몽’ 메시지


말 많고 탈 많았던 ‘옥자’가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적지 않았다. ‘괴물’처럼 긴장감 팽팽한 공포와 스릴러까지 기대하지 않았을지라도, ‘설국열차’ 정도의 맛깔난 구성의 미학은 빠지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영화는 극 전개 1시간까지 차진 맛과 멋을 안겨주기 무섭게, 이내 맥이 빠진다. 동물해방전선(Animal Liberation Front)이라는 동물애호단체가 1시간 뒤쯤 나타나면서 영화는 이상한 계몽극으로 접어들기 때문.

AI(인공지능) 시대에 맞춰 급속한 발전이 가져오는 생물학에서의 갖가지 묘미를 맛볼 기회 대신, 인간과 동물의 유대라는 따뜻한 정서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우리는 유전자 조작 생물에게도 도덕심을 잃지 말자”는 교훈만 안겨줄 뿐이다.



이 때문에 기승전결의 구조에서 미세한 디테일을 놓지 않았던 봉준호 감독 특유의 스타일은 이 영화에서 좀처럼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드라마 촬영에서 돼지 도축 현장을 보고 한때 채식주의자가 되었던 가수 김창완의 모습처럼 식용 동물에 대한 경계심이 선뜻 앞선다.

‘옥자’는 강원도 산골에 사는 13살 소녀 미자(안서현)와 10년간 함께 자란 슈퍼 돼지 옥자의 우정과 모험을 그렸다. 극비리에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통해 ‘싼값에 맛있는 돼지고기’를 대량 공급하려는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CEO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는 전 세계 26개국에 유전자 조작으로 생산된 슈퍼 돼지를 보낸 뒤 10년 후 다시 찾아오는 계획을 시도한다.

바깥세상이 단절된 채 오로지 자연과 함께한 10년의 세월에서 이들은 ‘아’하면 ‘어’하고 받아칠 정도의 돈독한 우정을 과시한다. “나 매운탕 먹고 싶어” 미자가 요구하면, 옥자는 높은 산에서 강물로 떨어져 고기를 튕겨낸다. 슈퍼돼지의 영특함은 AI 피조물 저리가라다. 미자가 낭떠러지에 떨어질 위기에서 옥자가 보여준 기지와 희생정신은 어떤 인간의 행위보다 더 감동적이다.


‘날선’ 봉준호식 스타일 빠진 밋밋한 ‘계몽’ 메시지
하지만 만기일 도래로 미자와 옥자가 결별하는 순간부터 영화의 중심축이 조금씩 흔들린다. 미자와 옥자가 주인공이었던 자리는 어느새 동물학자 죠니(제이크 질렌할), ALF 멤버들 등으로 옮겨오며 시선이 분산되고, 뉴욕의 활약상을 기대했던 관객에겐 이미 익숙한 선험적 스토리와 계몽적 메시지만 주어진다.

5000만 달러(약 564억원)가 투입된 블록버스터가 지향한 지점은 불편함보다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였는지 모르겠다. 주제 의식이나 경각심 전달에는 성공했을 수 있지만, 봉 감독 특유의 영화적 재미는 사라진 듯하다.

봉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쓴 이 영화에 넷플릭스는 어떤 간섭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날 선 시선이나 극적 전개가 일품이었던 그의 전작을 고려하면 생경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넷플릭스가 지향하는 무난한 남녀노소용 영화가 제작된 셈이다.

넷플릭스는 오는 29일 서울을 비롯한 6개 권역 7개 극장에서 ‘옥자’를 동시 개봉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멀티플렉스에서 이 영화를 관람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CGV 등 멀티플렉스 3사는 온라인과 극장 동시 상영은 영화계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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