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병의 휴머노미]성장· 고용의 左右 날개

머니투데이 강호병 뉴스1 부국장 겸 산업1부장 2017.06.13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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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5개 신산업 분야 700개사를 대상으로 '규제애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47.5%가 지난 1년간 규제 때문에 사업추진에 차질을 빚었다고 답했다. 여기에는 인증제도가 없거나 불합리해서 제품 출시가 늦어졌다는 사연, 실험용 물고기를 식용잣대로 수입규제하는 바람에 실험자체가 원만히 진행되지 못한다는 황당한 사례도 담겼다.

꼭 거대한 규제가 아니라도 손톱 밑 가시 같은 규제를 푸는 것이 기업에 더 필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법에 하라고 돼 있는 것만 가능한 우리나라에서는 법이나 제도를 고쳐서 판을 깔아주지 않으면 무엇이든 할 수 없다.



진보진영에서는 규제 완화를 우파 내지 보수진영의 논리로 생각해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규제완화는 곧 재벌특혜라는 인식도 강하다. 특히 보수정권에서 추진할 경우 야당의 저항이 심했다. 대기업이 벤처펀드를 만들어서 투자하는 것을 장려해야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것은 대기업 경제력 집중논리에 부딪친다.

저성장기에 기업투자가 예전에 비해 믿음직스럽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래도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결국 국내에 공장이나 점포를 지어야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늘 수 있어서다.



기업투자 활성화는 문재인 정부가 펼치고 있는 소득주도의 성장론을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일종의 분배론이다. 기업들로부터 성장과 고용을 얻어내기 쉽지 않은 시점에서 정부가 나랏돈을 들여서라도 소득과 일자리를 부어서 동력을 만들겠다는 시도다. 공무원을 포함, 공적 일자리를 만들고 기초연금 등 각종 증여성 지원을 늘리는 것이 이같은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다.

저성장기에 민간주도의 성장력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일리 있는 선택이다. 소방관, 사회복지사 등 공적 사회직종은 인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세수상황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침체된 성장과 고용목표를 하나의 이론에 의지해 달성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나랏돈은 양면성이 있다. 적자재정을 감수하면 나랏빚이 늘고 다른 데 쓸 돈을 줄이거나 세금을 더 걷으면 효과가 반감된다. 소득과 소비가 관계가 있지만 내수 소비가 투자를 촉진할 정도로 왕성하게 살아날지는 점치기 어렵다.


규제완화는 정부가 돈들이지 않고 기업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이와 관련 이번에 김동연 전 국무조정실장이 경제부총리에 기용된 것은 상당한 기대를 갖게 한다. 예산관료로 잔뼈가 굵은 그는 전임 정권들에서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천착한 바 있다. 인사청문회에서 그는 "규제프리존 특별법은 대기업 특혜가 아니다"고 일갈했다.

규제프리존 특별법은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에 특화된 전략산업을 지정하고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어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공약으로 민주당 등 야당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조차 후보시절 '대기업 청부입법'이라는 시각에서 반대했던 법이다.

그러나 다른 법에 우선하는 특별법인데다 하지마라는 것 빼고 다할 수 있는 네거티브시스템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효과가 기대되는 방안이다.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과거 철학과 다소 어긋나 보이는 정책에 얼마나 용기를 내서 김 부총리에 힘을 실어주느냐다.

지금 기업들은 새 정부 정책에 소외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축소 등 기업에 부담이 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기업 입장이 반영될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규제완화는 기업을 협상테이블로 흔쾌히 끌어들일 수 있는 당근이다.

성장과 고용에는 왕도가 없다. 왼쪽 정책도 필요하고 오른쪽 정책도 필요하다. 분배론을 펼치더라도 성장이 없는 상태보다 조금이라도 있는 상태에서 하는 게 쉽고 부드럽다.
뉴스1 부국장대우 겸 산업1부장뉴스1 부국장대우 겸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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