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뮤지컬 대부' 윤호진 "영원히 쉴때까지 달려야죠"

머니투데이 구유나 기자 2017.06.0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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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영웅 등 창작뮤지컬 산파..출연배우.후배연출가.가족 축하 이어져

윤호진 에이콤 대표. /사진=이동훈 기자윤호진 에이콤 대표. /사진=이동훈 기자


"작품 만드는 즐거움 때문에 70세 평생 물리적인 시간을 잊고 산 것 같습니다. 후배들과 '고고(Go Go) 80'까지 기운차게 달려볼 생각입니다."

국내 대표 창작뮤지컬 '명성황후'와 '영웅'을 키워낸 윤호진 에이콤 대표가 칠순을 맞았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연극·뮤지컬에 헌신해 온 '뮤지컬 대부'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한 인파로 5일 저녁 대학로가 시끌벅적했다.



윤 대표는 1948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영화감독을 꿈꿨지만 집안의 반대로 홍익대 정밀기계과에 입학했다. 원래는 일주일에 영화를 다섯 편씩 보는 '헐리우드 키드'였지만 사람을 직접 만나는 연극의 매력에 빠져 1970년 실험극장에 연구생으로 들어가 신인 연출가로 무대 인생을 시작했다.

주변의 우려에도 '망할 게 있어야 망하지'라고 웃어넘기며 연극을 시작했다. 윤 대표는 "당시 세 끼 먹는 게 너무 부러웠다"며 "그래도 밤마다는 모두 '왕'이 돼서 잤다. 다들 '햄릿' 소품용 망토를 하나씩 두르고 잤으니까"라며 웃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1981년 말. 윤 대표는 영국 런던에서 뮤지컬 '캣츠'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아 뮤지컬에 뛰어들었다. 이후 미국 뉴욕대 대학원에서 흑인들에게 짝퉁 롤렉스 시계를 팔아 생계를 지탱해가며 뮤지컬 공부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었죠. 한 번은 뉴욕에서 이가 너무 아픈데 치과 갈 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소주를 진통제 삼아 먹었어요. 한국 돌아와서 치과에 가니까 핀셋으로도 이가 뽑히더라고. 다섯 개 뽑았습니다. 요즘은 돈 좀 벌어서 임플란트를 일곱 개나 했습니다만 (웃음)."

5일 저녁 서울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윤호진 에이콤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고고 팔공(80)' 행사가 열렸다. /사진=구유나 기자5일 저녁 서울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윤호진 에이콤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고고 팔공(80)' 행사가 열렸다. /사진=구유나 기자
이날 자리에는 손진책 극단 미추 대표(국립극단 전 예술감독)와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부부,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 송승환 PMC프러덕션 회장,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등 공연계 거물들이 참석했다. 정동환, 안재욱, 김소현, 정성화 등 윤 대표와 함께 작업한 스타 배우들도 축하 공연 등을 통해 자리를 빛냈다.


손 대표는 "윤 대표와는 80년대 영국에서 6개월간 같이 생활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연극, 뮤지컬 등을 봤다"며 "좋은 연극을 보고 올 때면 제자리에서 양주 한 병을 다 비워 거기에 한국 연극에 대한 희망과 포부를 꽉꽉 담았다. 빈 병이 많아질 수록 (우리가) 한국 연극계에서 할 일이 많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뮤지컬 '명성황후' 20주년 공연에 참여하는 배우 김소현은 주요 넘버인 '내겐 누가 님인가요'를 불렀다.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 의사 역할로 열연한 배우 정성화는 "윤 대표님 덕분에 뮤지컬 배우로 잘 성장할 수 있어 너무나 감사하다"며 '영웅' 가사에 '윤호진'을 넣어 개사해 불렀다.



윤 대표의 아들인 사회적기업 마리몬드 대표 윤홍조씨는 "뗏목을 타고서라도 브로드웨이에 간다고 하시던 호랑이 같은 아버지"라며 "보여주신 열정을 본받아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윤 대표는 마지막 소감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안톤 체호프 '바냐 아저씨'의 마지막 대목을 참 좋아하는데요. 바냐 아저씨가 인생이 너무 허무하고 쓸쓸해서 슬픔에 잠겨있을 때 소냐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저씨, 슬퍼하지 마세요. 우리 이제 곧 영원히 쉴 때가 오잖아요.' 지금도 그 대사를 기억하면서 영원히 쉴 때까지 달려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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