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관리가 건설 경기부양보다 시급한 이유

머니투데이 김태형 이코노미스트 2017.05.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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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생각 다른느낌]저성장 속 가계부채 증가→소비수요 감소→경제성장 저하→소득 감소의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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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가계부채를 줄일 방안에 대해 논의해서 다음 회의에서 토론해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첫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가계부채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에서는 13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계의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비율(DSR)이 150%를 넘지 않도록 가계부채 총량제 조기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대선 전 가계부채 3대 근본 대책 중 하나인 ‘부채주도에서 소득주도의 성장정책 전환’을 위한 해법으로 제시된 공약사항이다.



문 정부의 첫 번째 금융정책이 가계부채를 줄이는 데 중점을 둔 것은 가계부채로 인한 경제위기감이 크기 때문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붕괴로 금융위기를 겪었던 우리로서는 지나치게 높고 가파른 가계부채 증가는 심리적 위축과 함께 경제 성장에 걸림돌이 됐다.

일부에서는 가계부채의 지나친 옥죄기는 건설 경기와 서민들의 자금 융통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를 제기한다. 그러나 지금은 가계부채 관리를 통한 견실한 성장이 필요한 때이다.



지난 정부에서는 경기 활성화라는 명목 하에 건설 경기 부양을 위해 주택담보대출 조건을 완화했다. 가계부채가 늘어나자 지난해 8월25일에는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발표해 금융 대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주택분양 시장 관리 방안을 추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계부채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지난해 말 1342.5조원으로 2013년 말 1019조원에서 300조원 이상 늘었다. 올해도 가계부채 총량은 줄지 않고 있다.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7년 1분기 중 가계신용’에 의하면 가계부채는 1359.7조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7.1조원 증가했다.

대출금리 상승과 주택담보대출 감소로 지난 해 4분기(46.1조원 증가)에 비해 증가폭이 줄었으나 금리 인하, 부동산 경기 회복으로 가계부채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2014년 1분기(3.4조원 증가)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규모이다.


그러나 지난 3년간 경제성장률은 평균 2.9%로 역대 정권 최저치를 기록했다. 결국 건설 경기 부양 정책은 경제성장은 견인하지 못하고 가계부채만 늘린 채 실패로 끝났다.

사실 가계부채 총량이 늘어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경기가 회복되고 소득이 증가해 부채상환 능력이 충분하다면 빚은 레버리지 효과를 발휘해 이익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연도별 ‘금융안정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2년도 말 133%에서 지난해 말 154%로 21%포인트나 증가했다. 점점 빚이 늘어나서 먹고 살 돈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저성장 기조와 더불어 가계부채가 소비수요를 줄여 경제성장을 가로막고 소득의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에 갇힌 것이다. 서민들의 자금융통이 어렵다고 소득이나 상환 능력에 대한 고려 없이 부채만 늘리는 것은 ‘언 발에 오줌누기’와 다름없다.

지금 대내외적 여건 변화는 시급한 가계부채 관리의 필요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먼저 금리인상 가능성이다. 현재 미국은 연방준비제도(FRB)가 지난 3월 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연 0.75~1% 수준이며 올해안에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1.25%로 동결을 유지하고 있지만 금리 인상 압박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물가도 서서히 오르는 추세다. 지난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1%에 그쳤으나 올해 들어 이미 2%를 넘었다.

이처럼 금리와 물가 상승이 지속되면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채무상환 능력은 더욱 저하되고 가계의 주름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올해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경제의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자료에 의하면 세계 경제 성장률은 2016년 3.1%에서 2017년 3.5%, 2018년 3.6%로 증가세가 예상된다.

세계 경제가 상승기에 오르게 되면 굳이 빚을 내서 건설 경기를 부양할 필요성이 줄어든다. 4차 산업 시대의 새로운 성장 동력은 빚이 아니라 혁신에서 찾아야 한다.

이와 더불어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과 일자리 확충, 2020년까지 소기업·자영업자 대책 마련을 전제로 한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등의 소득 정책으로 가계부채 관리 여력이 높아질 수 있다.

정부에서는 이달 안에 DSR 가이드를 마련하고 다음 달 공청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금융위원회에서도 전 금융권 DSR 도입을 위해 6월 중 DSR 로드맵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금융권 자율규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격 도입을 추진하는 상황이다.

모든 경제 주체를 만족시키는 정책은 없다. 경제 상황에 따라 선후를 따져야 하는데 지금은 가계부채를 줄여 서민들의 생활을 안정화하고 내수를 늘리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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