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당신과 싸우지 않겠다!
당신은 결코 나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골목 깡패들이 여학생을 놀리고 있다. 급한 상황이고 도와줄 사람이 없다. 경찰에 신고해도 늦을 것 같다. 어찌 하시겠나?
1. 못 본 채 지나간다.
2. 말린다. 시비가 붙으면 맞서 싸운다. 치고 박는다.
3. 말린다. 시비가 붙어도 맞서 싸우지 않는다. 맞으며 말린다.
"누구든지 덤벼라. 절대로 당신과 싸우지 않겠다! "
이런 각오가 바로 세 번째의 비폭력주의다. 시인이자 동화작가인 이현주 목사는 "첫 번째 폭력은 접어두고 두 번째 폭력의 주인공만큼은 되지 말자"고 다짐한다. 누가 덤벼도 절대로 싸우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어떤 말싸움 몸싸움에도 꿈쩍 않기로 한다. 어쩌면 여기에 첫 번째 폭력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 비결이 숨어있으리라 기대한다.
이현주 목사는 간디를 가슴에 담은 비폭력 평화주의자다. 그는 "폭력을 이기는 힘은 반폭력이 아니라 비폭력에 있다"고 굳게 믿는다. "모든 싸움이 두 번째 성냄에서 비롯된다"는 진실을 깊이 받아들인다. 그에 따르면 세상에서 전쟁을 없애는 길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 길은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자를 응징하는 데 있지 않고, 내가 그의 폭력에 대거리하지 않는데 있다.
비폭력은 폭력에 눈 감거나 폭력에서 도망치는 비겁이 아니다. 오히려 폭력을 넘어서는 가장 큰 용기다. '맞으며 말리는 용기'가 '치고 박는 용기'보다 크다. '안 싸우다 망해도 좋다'는 각오가 '싸워서 무찌르겠다'는 각오보다 한 차원 높다. 앞의 경우로 보면 1번에서 2번으로 가고, 2번에서 3번으로 간다. 비겁한 사람은 절대로 비폭력을 배울 수 없다. 그는 용기부터 배워야 한다. 그래야 더 큰 용기로 비폭력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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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자마자 떨거나 도망치기에 급급한 사람은 비폭력적인 사람이 아니라 겁쟁이다. 비폭력주의를 따르는 사람이었으면 그런 다툼을 막기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비폭력의 용기는 폭력의 용기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 폭력의 상징은 그의 무기인 창, 칼, 혹은 총이다. 그러나 비폭력주의의 방패는 신이다."
폭력은 죽이는 방법과 관련되고 비폭력은 죽는 방법과 관련된다. '치고 박는 용기'는 전쟁에 이르고 '맞으며 말리는 용기'는 평화에 이른다. '싸워서 무찌르겠다'는 각오는 영웅을 부르고 '안 싸우다 망해도 좋다'는 각오는 영혼을 부른다. 어떤 경우든 비겁자를 위한 자리는 없다. 비폭력주의는 비겁자를 위한 방패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자의 무기다. 그리고 그의 방패는 신이다. 그는 신과 함께 간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사랑의 신과 함께 간다. 죄는 미워해도 죄인은 미워하지 않는 용서의 신, 폭력은 미워해도 폭력을 행사하는 자는 미워하지 않는 평화의 신과 함께 간다.
나는 어떤가? 어떤 각오로 어떤 용기를 내서 어떤 방법을 쓰는가? 그도 저도 아니면 오로지 36계 줄행랑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