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이들 살린 '삼총사'

머니투데이 방윤영 기자 2017.05.1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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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천경찰서 민·관·경 '맞춤형 통합지원단'…상담서 사후관리까지 보살펴

/삽화=임종철 디자이너/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서울시 금천구에 사는 이모씨(44·여)는 남편에게 툭하면 얻어맞았다. 남편은 손과 발로 이씨 얼굴과 가슴 등을 때렸다. 별다른 이유도 없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이씨는 올해 2월19일에도 어김없이 맞았다. 첫째 딸 박모양(14·여)에게 커피를 가져오라 시켰는데 실수로 이불에 쏟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씨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이씨 집을 방문했을 때 상황은 심각했다. 집안은 거의 쓰레기장 수준이었고 아이들은 밥을 굶고 있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을 주고 살던 집도 월세가 밀려 보증금을 거의 다 까먹은 상태였다.

사건을 담당한 금천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아동학대전담경찰관 김승규 경위는 단순한 가정폭력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상담결과 이씨는 상습폭행 피해로 우울증에 빠진 상태였다. 청소는 물론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딸·아들 등 세 자녀의 식사조차 제대로 챙기지 않아 아이들은 아동학대에 놓여 있었다.



이씨는 남편과 날마다 돈 문제로 싸웠다. 남편은 일정한 직업 없이 발레파킹 등을 하며 살아가는데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 싸움의 끝은 언제나 남편의 손찌검이었다. 14년 전 겪은 부부 갈등도 매번 부부싸움의 불씨를 키웠다. 이씨는 14년 전 결혼해 큰딸을 낳은 뒤 남편이 유부남이란 사실을 알았다. 아이들을 위해 모든 걸 용서하기로 했지만 남편에 대한 신뢰는 이미 추락한 뒤였다.

김 경위는 단순 가정폭력 사건으로 처리할 수 있었지만 아이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김 경위는 "첫째와 둘째 아이가 학원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하더라"며 "열악한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공부하고 싶다며 밝게 웃던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고 말했다.

김 경위는 금천서 내 '맞춤형 통합지원단'에 이씨 가정을 소개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통합지원단은 범죄 관련자가 스스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민·관·경이 전방위적으로 지원하는 일을 담당한다. 지원은 상담(심리 치료)·힐링(사회적응 교육)·나눔(자금 지원)·희망(사후 관리) 등 네 단계로 진행한다. 금천서가 지원 대상자를 선정한 후 각 단계에서 도움 줄 수 있는 기관을 연결해준다.


금천서 통합지원단 지원을 받은 이씨 가정은 지난달 1일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었다. 아이들은 꿈에 그리던 학원에 다닐 수 있게 됐다. 민간 기업의 지원을 받아 새 옷과 신발, 참고서 등도 지원받았다. 이씨 역시 무기력하게 살던 삶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위해 취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남편과는 현재 무료 법률지원을 받아 이혼을 진행 중이다.

이씨는 "남편 폭력 속에 무기력해져 아이들에게 너무 못난 엄마였다"며 "많은 물품과 지원을 해주고 아이들 학원까지 보내줘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금천서는 2015년 말부터 서울 내에서는 처음으로 통합지원단을 꾸렸다. 지원에 참여하는 기관은 공·사기업을 합해 총 70개 기관이 넘는다.

그동안 40명이 통합지원단의 지원을 받아 희망과 꿈을 키우고 있다. 학교 폭력 가해자로 중학교를 중퇴했던 김모양(18)도 통합지원단 지원을 받고 모범생으로 탈바꿈했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현재 반에서 4등을 한다. 무사히 학업을 마칠 경우 통합지원단에 참여하는 사기업에 취업할 예정이다.

통합지원단의 지원 기간은 따로 없다. 지원 대상자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보살핀다.

김성종 금천서장은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뿐 아니라 범죄환경 개선도 경찰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가정폭력은 더 이상 가정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주변의 관심 어린 신고가 행복한 가정과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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