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이 소유한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 /사진=뉴시스
2008년 훈민정음 해례본 두번째 판본으로 추정되는 '상주본'을 발견한 사람은 고서적 판매상인 배익기(54)씨다. 배씨는 집을 수리하는 중에 상주본을 발견했다고 문화재청에 알렸다. 당시 현장 조사를 나간 문화재청 학예사들은 종이 재질과 서체 등으로 보아 진본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이후 골동품 판매업자 조모씨는 배씨가 가게에서 상주본을 훔쳤다며 그를 고발했다. 법원은 조씨의 소유권을 인정했으나 배씨에 대해서는 최종 무죄 판결을 내렸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인 배익기(54)씨가 지난달 10일 언론을 통해 공개한 상주본 일부 사진. 2015년 3월 배 씨의 주택 화재로 일부가 불에 탄 모습이다. /사진제공=배익기 후보
문화재청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배씨가 상주본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불명확한 상황"이라며 "배씨에게 4월 28일까지 상주본을 인도하지 않으면 반환 소송, 문화재 은닉 등으로 고발 조치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화재청이 선수를 빼앗기면서 또 다시 지지부진한 법적 공방이 예상된다. 배씨는 이미 지난달 25일 문화재청을 대상으로 '청구 이의의 소'를 제기했다. 이로써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문화재청이 반환 소송을 낼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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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선 명실공히 훈민정음 해례본 유일본을 인정받은 '간송본'에서도 잡음이 들린다. 안동 진성이씨와 광산김씨 문중은 지난 2~3월 한 달 간격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치열한 공방을 주고 받고 있다. 간송본의 경우 간송 전형필이 1940년 진성이씨 문중의 이용준씨로부터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씨의 처가인 광산김씨 측에서는 "(이씨가) 긍구당 고택에서 해례본을 몰래 가져온 뒤 장서인이 찍힌 표지를 찢어 훼손한 뒤 매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국어연구가는 "값을 헤아릴 수 없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둘러싸고 터무니없는 액수와 이해 관계가 부각되는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문화재청은 당장에 소득 없는 '반환'보다는 '보존'에 초점을 맞추고 더 이상의 훼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446년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등 한글 창제에 참여했던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 창제 목적과 원리를 밝혀 적은 글이다. 1940년 경북 안동에서 간송 전형필이 구입한 '간송본'(국보 70호)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온 사회가 들썩였다. 2008년 경북 상주에서 또 다른 판본인 '상주본'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기 전까지 훈민정음 해례본은 간송본이 유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