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살인 중계' 페북, 이대로 괜찮은가

머니투데이 나윤정 기자 2017.05.03 05:30
글자크기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요즘 SNS로 잔인한 영상이 생중계돼 문제가 되고 있다./사진=픽사베이요즘 SNS로 잔인한 영상이 생중계돼 문제가 되고 있다./사진=픽사베이


태국 남성이 생후 11개월된 딸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잔인한 모습이 '페이스북 라이브'로 생중계돼 전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길 가던 노인을 무참히 살해하는 생중계 영상이 퍼져 논란이 된 지 불과 열흘 만이다.

페이스북은 문제의 영상을 태국정부가 통보하기 전까지 24시간이나 방치했고 그 사이 영상은 무려 4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페이스북의 늦장 대응은 처음이 아니다. 올 1월에는 미국 시카고에서 흑인남성들이 장애인을 고문하는 모습을 생중계해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지난달 16일에는 클리블랜드에서 길 가던 노인을 총으로 살해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페북 라이브로 살인예고까지 한 상태여서 페북의 뒤늦은 대응에 질타가 이어졌다.

페북은 지난 3월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자살방지 대책을 강화했다. 이 대책은 이용자가 죽고싶다는 게시물을 페북 라이브에 올리면 AI가 자살위험 신호로 판단해 '그 즉시' 주변에 이용자의 인적사항을 전달하고, 누군가 신고하면 '그 즉시' 해당 동영상과 게시물을 보고해 지인에게 위치정보를 제공한다는 게 골자다. 이미 이런 대책을 실행중인데 왜 앞서 발생한 사건들엔 '그 즉시' 대응하지 못했을까.



불과 열흘 전 미국에서 총기 살해 영상이 생중계돼 마크 저커버그 CEO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모방범죄에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 실제로 태국 경찰 대변인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살인 현장이 소셜 라이브로 방송된 태국 최초의 사건"이라며 "최근 미국에서 있었던 사건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태국은 SNS 등에 게재되는 '부적절한' 콘텐츠를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페북의 허술한 콘텐츠 관리가 SNS 전반에 대한 규제를 초래한 셈이다.

휴대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나만의 방송'이 가능하다. /사진=픽사베이휴대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나만의 방송'이 가능하다. /사진=픽사베이
그렇지만 언제까지 페북만 탓할 순 없다. 게다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국내에선 방송통신위원회가 유해 콘텐츠를 방치한 인터넷업체에 최대 20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상정했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중이다. 문제는 이 법안이 통과돼도 구글, 페북 같은 해외사업자엔 적용되지 않는다. 게다가 현재 인터넷방송은 방송법상 방송서비스로 분류돼 있지 않아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없다. 10~30대 대부분이 유튜브와 페북으로 동영상을 보고, TV보다 인터넷을 더 이용하는 현실을 인지하지 못해 대책마저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동안 인터넷방송에 대한 규제는 '표현의 자유'와 맞물려 논의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페북의 잇따른 범죄 생중계는 현실적 대안 부제와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근 독일은 SNS가 혐오 게시물을 방치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지우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우리도 더이상 미루면 안된다. 최대한 빨리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 인터넷방송 자체가 왜곡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보세]'살인 중계' 페북, 이대로 괜찮은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