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청 R&D 자금, 외국계·PEF로 샌다

머니투데이 김하늬 기자 2017.04.2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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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 1300억 '월드클래스 300' 36개 기업…일부 히든챔피언 육성 목적 '의문'

중소기업청이 연간 1300억원의 기술개발(R&D) 예산을 투입하는 ‘월드클래스 300’ 사업에 외국계 및 사모펀드가 최대주주로 있는 기업들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형 히든챔피언 육성’이라는 제도 취지와 달리 정책자금이 외국계 기업이나 사모펀드의 배불리기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정부부처 등에 따르면 최근 중기청은 36개 중소·중견기업을 월드클래스 300‘ 지정 기업으로 선정했다. 이번 선정된 기업들은 앞으로 5년 동안 연간 최대 15억원 이내 R&D 보조금과 7500만원의 해외마케팅 자금을 지원받는다. 기업당 평균 보조금이 최대 60억원에 달하는 중기청 내 가장 큰 R&D 사업이다.



문제는 선정 기업들 가운데 경영권 매각을 통한 차익실현이 목적인 사모펀드(PEF)나 외국계, 대기업 등이 최대주주 또는 주요주주로 있는 곳들도 포함됐다는 점이다. 삼양옵틱스는 에스와이오투자목적회사가 지분을 100% 보유한 기업이다.

실소유주는 사모투자펀드(PEF)인 VIG파트너스(옛 보고펀드)다. 삼양옵틱스는 2015년 한 차례 기업공개(IPO)에 실패한 뒤 올해 6월 코스닥 상장을 다시 준비하고 있다. VIG파트너스는 상장과 동시에 우선 지분 400만주(40%)를 매각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회사 대성엘텍은 2013년부터 꾸준히 사모펀드에 지분을 매각했고 지난해 최대주주 지위를 반납했다. 창업주가 실제 경영을 맡고 있지만 지난해 무상증자 및 감자 등으로 사모펀드 지분율은 55.16%까지 치솟았다. 사실상 경영권이 넘어간 상태다.

이에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사모펀드는 회사 인수 직후 사업과 인력을 구조조정한 뒤 회사가치를 높여 되파는 게 주요 목적”이라며 “정부가 수십억원을 투입해 사모펀드의 매각가격을 높여주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외국계 기업을 선정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SKF씰은 자동차용 베어링 세계 1위 기업인 스웨덴 SKF가 최대주주(51%)인 회사다. SKF는 2016년 기준 자산규모 10조원이 넘는다. 한국SKF씰은 2015년 당기순이익 128억원 올리고도 그보다 많은 159억원을 배당했다. 반면 같은 해 연구개발비는 22억원에 그쳤다.


금형 전문기업 에이테크솔루션도 선정 타당성 논란이 인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가 2대 주주로 있어서다. 에이테크솔루션은 2001년 삼성전자에서 분사한 기업으로 아직도 삼성전자 보유 주식은 16%에 이른다.

이밖에 레이캅코리아, 티에스이, 쏠리드, 세원정공, 트리노드 등은 최근 3년간 매출과 영업이익이 역성장했음에도 월드클래스 300에 선정됐다. 이들 기업 중에는 적자전환한 사례도 있다. 업계 일각에서 월드클래스 300 선정기준의 적절성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한국형 히든챔피언을 육성한다고 하는데 시장에 도태된 기업도 일부 포함됐다”며 “선정기준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중기청 관계자는 사모펀드가 최대주주인 기업을 선정한 것에 대해 “마땅한 가이드라인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에이테크솔루션의 2대 주주가 삼성전자인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며 ”외국계 기업의 경우 모회사가 자산 10조원을 넘지 않으면 선정할 수 있는데 AB SFK의 경우 이를 넘지 않아 선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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