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시설보다 더 중요한 '시선'

머니투데이 최민지 기자 2017.04.21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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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한국우진학교는 두 가지 이상의 장애를 가진 중도·중복장애 학생을 위해 만들어진 특수국립학교다. 입구부터 학생을 위한 배려가 눈에 띄었다. 학교로 들어가기 위한 길은 경사로로 만들어져있고 엘레베이터는 여러 대의 휠체어가 들어갈만큼 넓었다. 박은주 교사의 안내로 고교 1학년2반 교실로 들어갔다. 책·걸상은 없었고 여러 학습보조기구가 놓인 교탁이 교실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학생들 대부분 휠체어에 앉아 수업을 받기 때문에 책상이 필요 없었다.

점심시간도 특별했다. 보조교사와 공익근무요원, 자원봉사자부터 담임교사까지 학생들의 식사를 돕는다. 이날 박 교사가 식사 보조를 맡은 학생은 학교에서도 장애정도가 심한 축인 한 여학생이었다. 휴지를 잔뜩 쥔 왼손을 학생의 턱 밑에 고정하고 오른손으로 밥을 떠먹였다. 밥을 삼키지 못하고 뱉을 때마다 박 교사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턱주변의 음식물을 닦아냈다.



모든 장애학생들이 이처럼 ‘특별한’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수학교를 혐오시설로 인식하는 주민들의 반대 탓이다. 서울교육청은 지난 15년간 특수학교를 한 곳도 짓지 못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일반학교에 진학한 장애학생들은 이래저래 ‘골칫덩이’로 취급받기 일쑤다. 특수학교 추가 설립이나 예산 지원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일반인들의 인식개선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선진국은 장애학생의 90% 이상이 일반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다. 교육부가 일반 학생들의 인식개선을 위해 5개년 계획을 준비 중인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박 교사는 한국북경학교에서 특수학급 교사를 맡았을 때의 일화도 소개했다. 박 교사는 “장애학생에 대한 인식 개선과 일반학생들과의 교류를 위해 야외활동 프로그램도 만드는 등 전교생을 대상으로 ‘장애인 먼저’라는 캠페인을 벌였다”며 “그 덕분인지 모든 아이들이 장애학생들을 좋아했다. 장애학생과 1대1 야외수업에 가려는 지원자가 너무 많아 탁구공으로 추첨하고 떨어진 학생은 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결국 장애학생을 위한 교육정책은 격리가 아닌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문득 캐나다에서의 경험을 들려준 한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전쟁이 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애인들이 거리에 넘쳐났다”며 “그런데 알고보니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훨씬 잘 갖춰져 있고, 비장애인의 인식도 좋아 우리나라보다 (장애인들의) 바깥 활동이 많았을 뿐”이라는 얘기였다. 보다 중요한 것은 ‘시설’이 아닌 ‘시선’이다.
[기자수첩] 시설보다 더 중요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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