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의 틱, 택, 톡] 4월, 바람나고 싶다..바람 되고 싶다

스타뉴스 김재동 기자 2017.04.15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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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천 벚꽃 모습./사진= 뉴스1당진천 벚꽃 모습./사진= 뉴스1


4월이면 바람나고 싶다/바람이 나도 단단히 나서/마침내 바람이 되고 싶다.

정해종 시인의 시 ‘4월이면 바람나고 싶다’가 이즈음 딱 내 심사를 설명한다. 국립현충원으로 연결된 동네 뒷산으로 산책을 나가보면 매화며 산수유며 조팝나무며 목련이며 개나리, 진달래에 벚꽃까지가 제 순서도 안챙기고 덩달아 피어있다. 꽃내음 머금은 바람은 쌀랑과 훈훈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며 춘심을 들었다놨다한다.

‘지금 선운사를 찾으면 춘백이 꽃머리째 뎅겅뎅겅 지고 있겠네’, ‘영취산 10만평 진달래밭은 얼마나 아름답게 불타오르려나’. ‘구례에서 하동가는 섬진강길 벚꽃은 설마 다 지진 않았겠지’, ‘뜨끈한 구들방 차지하고 고로쇠물 두어주전자 마셨으면 좋겠다’... 눈앞에 흐드러진 꽃들을 보면서도 상념은 정처없이 엄한 데를 헤매곤 한다. 그러다 하르르 하르르 날리던 현충원 벚꽃 몇잎 머리에 얹고 마침내 집앞에 이르러, 콕집어 목련꽃 그늘밑 벤치에 앉으면 코로 입으로 절로 ‘4월의 노래’가 비집고 나온다.



계절의 여왕을 5월이라고들 하는데 내게 계절의 여왕은 4월이다. 박목월시인의 싯구처럼 돌아온 4월은 언제나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이전까지의 무채색 세상이, 이꽃 저꽃 그꽃에 더해 손톱같이 작게 돋는 여린 잎의 생명력으로 색을 입는다. 흑백의 시대가 가고 컬러의 시대가 열린다. 겨우내 힘들게 힘들게 끌어올린 얼마의 수분과 얼마의 양분이 마침내 싹을 틔워내는 경이. 출생의 고통에 진빠진 갓난쟁이처럼 무력해보이지만 무한한 성장의 잠재력을 엿뵈주는 어린 연두빛의 향연. 이 즈음이면 바람마저 경의를 표하듯 그것들의 새 시작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이런 시작의 계절 4월이면 갓나온 세상이 궁금한 어린 것들 호기심의 아우라가 세상을 가득 채우는 모양이다. 그래서 살아온 세월이 제법인 주제들조차 들쑤셔 바람나고 싶고 바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춘몽(春夢), 봄꿈이 유명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아이들만 봐도 오늘은 가수가, 내일은 대통령이, 모레는 과학자가 되고싶어한다. 꿈이 많다.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하몽이나 추몽이나 동몽보다 춘몽이 자연스러운 것은 봄이 바로 이런 어린 것들의 계절이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이 4월 대한민국도 꿈을 꾼다. 지난 겨울 힘겹게 힘겹게 물과 양분을 끌어올렸던 나무들의 노고처럼 대한민국도 지난 세월의 적폐에 가로막힌 모세혈관을 촛불로 뚫느라 몸서리를 앓았다. 그리고 조기대선정국이란 움을 틔웠다. 이 움이 한창 싹으로 자라는 중이다.

하지만 바람은 봄바람이 아니다. 사드배치를 놓고 서쪽 나라 중국으로부터는 반한류 한한류란 황사가 불어오고있고 북으로부터는 미사일 발사 핵실험이란 삭풍이 불어오고 있고 동으로부터는 칼빈슨 항공모함 전단이란 샛바람이 불어온다. 그로인해 ‘미국의 북한 공습 가능성’이란 '4월 위기설'마저 퍼지는 판이니 마음은 주눅들고 꽃타령하기엔 민망한 시절이긴 하다.


그럼에도 4월은 꿈을 꾸어야 한다. 이 후보 저 후보 다섯의 싹들이 저마다의 꿈을 대한민국에 덧씌우고 있다. 다른 건 모르겠고 ‘대통령답지않은’ 노란 싹을 세심히 거르고 ‘대통령다운’ 싹을 찾아 그와 함께 희망을 꿈꿀만한 계절이다. ‘답지 않은’ 사람을 뽑아 ‘일장춘몽’을 꾸는 일은 이제 그만 할 때다.

그리고 또 정해종 시인의 말처럼 이 4월에 우리 모두 바람이 나서, 바람이 되어서, 바람이 되어도 거센 바람이 되어서, 우리 사이의 온갖 불신과 미움들을 데리고 멀리 가서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 버려두고 오면 좋겠다.

이 4월을 보내며 나도, 대한민국도 산뜻해졌으면 하는 소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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